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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칼럼



《사랑은 행동이다》어머니 업고 홍콩•발리 여행하기
19-04-08 09:42 2,257회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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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어머니 그리고 사랑

어머니 업고 홍콩ㆍ발리 여행하기


 

 장모님을 모시고 중국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아내에게서 칙사 대접을 받으면서 행복하게 생활하던 중, 엉뚱한 데서 문제가 일어났다.

 어머니의 오랜 지병으로 병원 치료를 받기 위해 한두 달에 한 번씩 서울에 올라오시는 부모님께 장모님과의 중국 여행 이야기를 신나게 하던 중에 어머니 표정이 심상치 않으셨다. 왜 그러실까 했는데, 갑자기 어머니께서 “네 장모는 혼자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분이 중국 가고 싶다고 해서 남의 귀한 아들을 그렇게 고생시키나” 하고 불쑥 내 뱉으시는 말을 듣고는 ‘아이고 일 터졌구나’ 싶었다.

 

 그 말씀을 하신 이후부터 어머니의 심사는 좀처럼 풀릴 것 같지 않았다. 괜히 이야기를 꺼내서 평지풍파를 만들었구나 싶었고, 아내도 어머니를 대할 때마다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이러다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 같은 예감이 서서히 들기 시작하면서 아내와 해결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면서 마침 부모님 회혼식(결혼 60주년) 할 날도 얼마 안 남았으니 회혼 기념으로 두 분을 모시고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아내와 의견 일치를 봤지만 이번에도 문제는 어머니의 건강이었다. 어머니도 그때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제대로 걷지를 못하셨기 때문이었다.


 중국 여행에서 장모님을 업고 산길을 내려오느라 혼이 났던 나로서는 또 다시 어머니까지 업고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평지 길이고 많이 안 걸어 다녀도 될 만한 코스를 찾았는데 그렇게 해서 고른 장소가 인도네시아의 발리였다.

 그때가 2003년이었다. 코스닥 시장 거품 붕괴와 카드대란 및 기업들의 중국 이전으로 내가 경영하는 여의시스템도 극심한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였다. 여행 경비도 만만치 않은 부담이 되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여행 패키지를 찾아야 했다. (아내는 여행 경비 절감 차원에서 함께 가지 못했다.) 그래서 국적기보다는 저렴한 캐세이 퍼시픽을 타고 홍콩을 경유해서 가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회혼 기념으로 두 분을 모시고 발리 여행을 가기로 했다는 것을 전해 들으신 부모님께서는 너무도 기뻐하셨다. 특히 일제 강점기의 젊은 시절에 중국에서 노무자로 일하시면서 여기저기를 내 집처럼 돌아다니신 아버지께서는 홍콩 경유라는 부분 때문에 더 기뻐하셨다.

 유난히도 여행을 좋아하지만 여러 가지 형편상 함께 못 가 서운해 하는 아내를 남겨두고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떠났다. 아버지 어머니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잔뜩 들떠 계셔서 모시고 오길 참 잘했구나 싶었다. (어머니는 여행을 다녀온 후 2년 뒤에 돌아가셨기에 어머니의 건강 때문에 여행을 미뤘다면 훗날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4시간 가까운 비행 끝에 경유지인 홍콩에 도착했다.


 발리의 덴파사르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출발시간이 7~8시간 정도 남아 있었기에 그 시간 동안 홍콩 시내 여행을 한다고 가이드가 이야기했을 때까지만 해도 또 다른 낭패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은 홍콩 시내를 버스로 가볍게 둘러본 뒤인 구룡공원 투어에서 발생했다. 구룡공원이 높낮이가 심한 지역에 자리 잡고 있어서 류마티스 관절염인 어머니의 다리 상태로는 걸어다니시기 힘들었다. 그런데도 아픈 다리를 이끌고 20여 분을 억지로 따라다니신 어머니의 다리는 어느 순간부터 관절이 퉁퉁 부어올라서 한눈에 보기에도 더 이상 걷다가는 병원 신세를 질 게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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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공원에서(아버지는 사진만 찍으면 완전 차렷! 자세가 된다.)

 


 그 시간부터 나에겐 중국 용경협의 데자뷰가 되풀이되기 시작했다. 준비해 갔던 소염진통제를 다리에 발라 드린 후 오름길과 내리막길에서는 어머니를 계속 업고 다녔다. 덕분에 젖 먹던 시절 이후로 어머니와 가장 많은 스킨십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머니도 장모님보다는 조금 덜하시지만 나름대로 풍만한(?) 몸매를 가지고 계셨기에 업고 다니기가 만만치 않았고, 어머니께서는 나이가 50이 넘은 자식이 땀을 줄줄 흘리며 업고 다니는 것을 너무 안쓰러워 하셨다.

 그래서 내가 한마디 했다.

 “어머니! 저에게 미안해하지 마세요. 제가 어릴 적에 어머니는 저를 수십 수백 배 많이 업고 다니셨잖아요. 그때 어머니는 너무 행복했다고 하셨지요? 저도 지금 어머니를 업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아버지도 그때 요추 협착 수술을 받으시고 완쾌가 안 되어서 걷는데 다소 무리가 있으셨지만 그럭저럭 혼자 걸으실 수 있었고 내 배낭도 대신 메주셔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좌우지간 높은 기온에 습도가 높은 홍콩에서 어머니를 업고 다니느라 중국 용경협 못지않게 땀깨나 흘렸다. (여행 다녀오신 이후로는 어머니께서 장모님 중국 여행 이야기를 다시는 안 하신 것으로 봐서 우리 부부의 작전은 한마디로 말해서 ‘대성공’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일제 강점기에 와보셨던 홍콩에 대한 감회가 남다르신 것 같았다. 한 가지 큰 부담을 덜었던 것은 두 분이 생각 밖으로 홍콩의 향채(고수)와 독특한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들을 잘 드신다는 점이었다. 음식에 대한 부분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기에 장모님과 같은 해프닝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곤 다섯 시간 가까운 비행으로 발리의 덴파사르 공항에 도착 했다. 공항에서 작은 문제가 생겨서 시간을 조금 지체하는 바람에 우리가 묵을 리조트에는 밤 12시가 지나서 도착했다.

 리조트는 객실 4개가 2층 높이의 건물(1층과 2층 객실이 각각 2개씩 있다)로 되어 있는 자연친화적인 오두막집이 키 큰 야자수 사이에 숨어 있었기에 우리가 묵는 숙박동에서는 다른 숙박동이 잘 보이지 않았고 동과 동을 이어주는 보도에는 아주 희미한 꼬마전등만 켜져 있어서 초행길에는 근무자를 따라가지 않으면 길이 있는지도 분간하기 쉽지 않았다.

 부모님을 붙어 있는 옆방에 모셔 드리고 내 방으로 건너오니 긴 비행과 홍콩에서의 어머니 업고 다니기로 인하여 갑자기 피곤이 밀려와 정신없이 꿈나라로 직행했다.

 


 다음 날!

 아침 햇살이 창가로 스며들기에 부스스 일어나서 문을 열고 밖을 봤더니, 주변 분위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선경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의 펜션 분위기의 나지막한 오두막집 주변에 엄청 큰 야자수들이 들어서서 숲속에 드문드문 있는 오두막집들을 가리고 있었고 온갖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귀를 어지럽혔다. 거기다가 야자수 사이로 저만큼에 남태평양의 푸른 물결이 넘실대고 있었다.

 우리가 묵는 숙소는 호텔이 아니라 리조트였다. 주변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잠시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어제 다리가 퉁퉁 부어서 힘들어 하시던 어머니의 건강 상태는 어떠신가 싶어 부모님 계신 방을 노크했더니 두 분은 벌써 나가시고 안 계셨다.

 잠이 덜 깬 눈으로 호텔 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니 야자수 숲속에 수영장과 레스토랑이 멋있게 자리하고 있었고 관광객들이 아침식사를 하느라 레스토랑 주변이 부산했다.

 부모님께서 해변을 산보하고 저만치에서 걸어오고 계시기에 잠시 기다렸다가 같이 아침식사를 했다. 식사하면서 어머니께서 활짝 웃으며 말씀하셨다.

 “큰애야! 우리는 어제 저녁에 고층 건물의 일반적인 호텔을 생각하다가 전등도 제대로 켜지 않은 어두침침한 여관 같은 곳을 들어오기에 싸구려 여행상품을 예약했구나 싶어 속으로 조금 섭섭하게 생각했단다. 그랬는데 방에 들어와 보니 시설이 여관 같지 않게 너무 좋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는데 새벽에 일어나서 방을 나와 보니 세상에 이렇게도 아름다운 데가 있나 싶어서 아버지와 주변을 돌아다녀 보고는 천국같이 이렇게 좋은 호텔을 어제 저녁에는 여관 같다고 생각한 게 얼마나 미안하던지… 아버지하고 바닷가를 다니면서 너무 즐거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리조트 측 설명으로는 자연 친화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밤에는 달빛이나 별빛을 보라고 전등 불빛을 최대한 희미하게 해둔다고 했다. 리조트의 아침은 내가 생각해 봐도 낙원이 따로 없었다. 이렇게 좋은 여행지를 여행 경비와 학교 다니는 애들 때문에 아내와 같이 오지 못한게 미안했다.

 수영장 옆의 비치 의자에서 책을 읽고 있던 독일 여행객과 짧은 영어 실력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곳에 한 달째 머물면서 책도 읽고 시간 나면 수영도 하면서 보내는데 마음도 편안하고 비용도 얼마 안 들어서 너무 좋다고 한다.

 부모님께서 리조트 시설에도 만족해 하셨고, 아침에 산보까지 하신 것을 보니 어머니 다리도 어제보다 많이 회복되신 것 같아서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발리에서의 첫날 여행은 적도 부근이라서 기온은 상당히 높았지만 습도가 낮아서 그늘에서 쉴 때는 시원함도 느낄 수 있고 관광지의 경사도 심하지 않아서 어머니를 조금씩 부축해 드리는 정도로도 어렵지 않게 하루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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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 해변에서 결혼 60주년 데이트


 

둘째 날

 오늘은 아침식사 후에는 자유시간이라고 한다. 함께 오신 분들은 대부분 래프팅을 한다고 예약을 해서 떠났고 부모님께서는 여기저기 다니는 것보다 남태평양 해변을 걷는 게 너무 좋다고 리조트에 있겠다고 하셨다. 나도 이번 여행은 부모님을 모시는 게 주요 목적이라서 주저없이 부모님과 같이 남았다.

 그런데 한국에서 함께 온 TC(Tour conductor)가 자기가 대신 모 시고 있을 테니 래프팅을 다녀오라고 한다. 부모님께서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시기에 래프팅 이벤트사로 전화해서 혼자인데 가능한지 알아봤더니 “No problem!”이란다.

 래프팅 이벤트 샵에 갔더니 계절적으로 관광객이 많이 없는 때라서 그늘에서 놀고 있는 젊은 래프팅 가이드가 따라나서기로 했다. 발리의 래프팅 코스는 그랜드 캐니언이나 한탄강처럼 평지에서 아래로 200~300미터 움푹 들어간 협곡 속에 있었기에 차에서 내려서 급경사의 흙길을 따라 한참이나 아래로 내려가야 출발점이 있었다.

 남국 특유의 흙탕물이라서 물속에 몸을 담그기는 싫었지만 계곡이 워낙 협곡이고 험난한데다가 주변에 열대 특유의 나무들과 바위 위에서 몸을 말리는 1미터가 넘는 도마뱀도 심심찮게 볼 수 있어서 부모님께는 조금 미안했지만 오길 잘했다 싶었다. 

 래프팅 가이드는 17살쯤 된 젊은 친구였는데 성격이 밝은데다가 영어 문장 구사 능력은 없었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수십 개의 영어단어만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훌륭하게 표현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둘이서 장난도 치고 때로는 서로의 조국 유행가(협곡이라 노래를 부르면 큰 동굴 속처럼 메아리쳤다.)도 목청껏 부르면서 신나게 래프팅을 했다.

 리조트에 돌아와 보니 그동안 두 분은 결혼 60년이 며칠 남지 않았을 때라 해변에서 회혼 데이트를 즐기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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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의 해안 절벽

 

 

 그 다음 날은 관광버스를 타고 이곳저곳을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나의 여행 목적이 부모님을 돌보는 것이라서인지 여행 코스에 대한 부분은 크게 기억 속에 남은 게 없고 가파른 계단 길에서 팔십이 다 되신 어머니를 업고 땀 흘리며 오르던 기억과 발리가 힌두교의 섬인지라 도처에 소들이 마음대로 돌아다니던 것이 특별한 풍경으로 남아 있다.

 아직도 장모님과 어머니를 업고 다녔던 중국과 홍콩, 발리 여행을 떠올릴 때면 그때 있었던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생각나서 가벼운 웃음을 입가에 흘리게 된다. 그러다가도 이젠 다시 못 돌아올 먼 길을 떠나셔서 더 이상 업어 드릴 기회가 없는 것이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최진희 씨가 부른 <어머니>를 마음속에 담아 보는 것으로 가신님을 마음속에 그려본다.

 



마음 하나 편할 때면 가끔씩은 잊었다가

괴롭고 서러울 때 생각나는 어머니

지난 여름 정든 고향 개울가에서 어머님을 등에 업고 징검다리 건널 때

너무나도 가벼워서 서러웠던 내 마음

아직도 나는 나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젖줄 떠나 자란 키는 당신보다 크지만

지금도 내 마음은 그 팔베개 그립니다.

내 팔베개 의지하신 야윈 얼굴에 야속하게 흘러버린 그 시절이 무정해

어머님이 아실까봐 소리 없이 울었네.

지금도 그 한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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