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만사 새옹지마!
3년 전 우리 부부가 염라대왕을 만날 뻔 했던 이야기와 악연이 선한 인연이 되면서 ‘인생만사 새옹지마’를 경험했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성남산업공단 원로기업인들의 강압에 가까운 권유로 공단이사장 선거를 불과 보름 남짓 남겨놓고 출마를 결정했다.
그런데 출마 후 후회에 이르기까지는 하루면 충분했다.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나 자신도 모르는 나의 악행이 공단 내에 거짓풍문으로 떠돌기 시작했고 나의 지인 이름을 빌려서 지인이 그렇게 이야기했다는 식으로 적당히 가공까지 되어 있었다.
그 거짓 풍문 속에는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든 성에 관한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었기에 내가 왜 이런 진흙탕에 빠져드는 선거에 출마했나 싶어서 후회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선거제도는 정치인들의 나쁜 것만 배웠는지 공단이사장이 지지하는 후보는 벌써 위임장을 잔뜩 받아놔서 내가 상대후보를 이기려면 선거당일의 직선에서 83%이상의 지지를 받아야했다.(보통 단체장 선거의 위임장은 정족수를 채우기 위한 것이지만 성남공단의 위임장은 이사장이 밀고 있는 후보에 투표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가능성이 없는 선거에 바보같이 뛰어든 꼴이 되었고 거짓 풍문으로 평범하게 살아온 나의 삶까지 부정될 상황이었기에 어떤 날은 밤에 자다가도 잠이 깨졌고 그럴 때면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 커져가서 잠을 이룰 수도 없었다. 그런 악조건 하에서 보름 후에 치른 선거에서 고맙게도 저를 위해서 뛰어주신 자발적 참여자들로 인하여 87%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 그런데 당선된 이후에도 나에 대한 괴롭힘은 끝이 없었는데....
1. 선거 직후 임시이사회를 소집하여 내가 부정선거 했다면서 당선 무효 의결(그 이후 성남시에서 공문으로 선거가 적법하게 진행되었다고 유권 해석하면서 무효 의결 자체를 무효화시켰다)
2. 법인 인감을 훔쳐가서 이사회를 소집 못하도록 훼방 (법인 인감 돌려받는데 며칠 걸렸다)
3. 신임 이사장의 권한인 상임고문을 취임 2~3일전에 3년 임기로 임명(불법 임명된 상임고문에게 사임 요청했을 때 들었던 무서운 말을 소개하면 “성남에 힘의 역학관계가 어떻게 되는 줄 잘 모르시나 보네요.” 이런 표현은 조폭들이 쓰는 말 아닌가?)
4. 공단직책에 없는 홍보담당자를 신임 이사장 취임 1주일 전에 고용
5. 수시로 쌍욕에 가까운 표현으로 비난(욕설을 고맙게도 문자로 보내주었기에 아직도 내 스마트폰에 저장되어 있다. 미워하진 않더라도 잊지 않기 위해서..)
6. 특정인은 공단본부에 채용해서는 안 된다는 터무니없는 조건걸기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선거를 치른 후 한 달여 동안 무수한 괴롭힘을 당하다보니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더니 취임식하기 며칠 전부터는 체한 것 같은 증상이 지속되었다. 병원을 다녀왔고 처방약까지 복용했으나 상태는 점점 악화되면서 복통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저녁 8시가 넘어 병원응급실로 급히 가는 도중에 갑자기 참을 수 없는 구토와 함께 위속의 음식물과 위액이 분수처럼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진찰 결과 병명은 장폐색증으로 창자가 막혀서 음식물이 내려가지 못하는 상태였다.
영양제 투여 바늘을 꽂고 코를 통해서 위액 배출을 돕기 위한 코뚜레까지 끼우다보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영락없는 중환자였다.
3월 중순의 성남 산업관리공단 이사장 취임식!성남 시장과 귀빈들까지 참석하는 취임식 직전에 병원에서 영양제 바늘과 코뚜레를 빼고 취임식에 참석했다가 끝나자마지 허겁지겁 입원실로 직행했다. 다시 영양제 주사와 코뚜레를 하고서....
시간을 돌려서 응급실에 갔던 때로 돌아가 보자.
나를 진단했던 의사가
“32살에 위암수술했는데 장폐색이 이번에 처음이라고요? 그동안 건강관리 엄청 잘하셨네요.”
내가 위암수술을 받았었기에 장폐색이 쉽게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의사의 말을 듣고서야 알게 되었다.
10여 일간의 병원신세를 진 후 퇴원한 다음날부터 오늘까지 단 하루도 빠짐없이 평일에는 하루 1만보 이상 걷고 주말에는 등산, 암벽등반(작년에 80여회 등산 및 암벽등반을 했다)을 하면서 오늘까지 5년 동안은 주말에는 피치 못할 상황이 아닌 한 무조건 산과 자연을 벗 삼았고 아내가 좋아하는 골프장에도 간혹 따라갔다.
매일 저녁에는 아내와 같이 성남아트센터나 탄천을 걸으면서 마음을 추스르다 보니 나를 음해했던 이들에 대한 증오의 마음을 모래에 새기면서 서서히 풀어졌고....(나는 평소에도 감사하는 마음은 바위에 새기고 서운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모래에 새긴다는 옛 현인의 글을 가슴에 담고 산다)
그런데 아내와 같이 매일 걷기 시작한지 2년이 지났을 때(2021.4.16.) 주말의 이른 새벽에 백령도 안보관광을 가기 위하여 제2경인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졸음운전 승용차가 1차선을 고속주행하면서 2차선을 달리던 내 차의 옆구리를 박았다.
그 순간 차의 앞바퀴가 허공에 떴는지 자동차 유리창으로는 푸른 하늘만 보였다. 충돌 후 차가 갓길의 시멘트 옹벽을 처박기까지의 짧은 찰나에 머릿속을 훓고 지나가는 생각은 이랬다.
“아! 이번 생은 여기서 끝이구나.”
‘꽝’ 소리와 함께 차가 옹벽을 박고 멈추는 순간을 인지하면서
‘내가 아직 죽지는 않았구나.’ 싶었다.
앞부분이 완전히 망가진 차는 엔진룸에서 시커먼 연기가 솟아올랐고 조수석 문짝이 찌그러져서 탈출이 쉽지 않은 아내가 옆에 있었기에 급히 소화기를 꺼내려고 차문을 열고 트렁크를 열었더니 맙소사! 충격에 소화기 손잡이가 부러져서 작동이 안 되었다.
아내에게 빨리 나오라고 소리를 쳤더니 다행히도 찌그러진 문을 억지로 열고 밖으로 빠져 나왔다. 두 사람의 얼굴은 에어백에 부딪혀서 실핏줄이 여기저기 터져있었고 에어백은 완전히 찢어져서 처참한 몰골의 걸레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사력을 다해서 차 밖으로 나온 아내는 그 자리에 주저앉으면서 가슴이 아파서 호흡도 곤란하고 허리가 아파 서있을 수가 없다고 했다.
잠시 후 경찰차와 119 구급차량이 와서 사고 조사(가해차량 운전자가 자신이 졸아서 부딪혔다고 자인)를 했다.
119 구급차에 실려서 가까운 병원을 갔고, 병원에서 검사결과 나는 전신 타박상만 입었고 큰 부상은 없었지만 아내는 갈비뼈 10개가 부러지고 척추 1개가 복합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차는 폐차했다)
담당의사가 환자의 나이가 많아서 복합 골절된 척추의 자연 치유는 안 되므로 척추주변의 근육 붓기가 가라앉는 1주일 후에 척추 3개를 핀으로 고정시키는 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입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병원에서 입원 허가를 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척추고정 플라스틱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어야한다는 주의사항과 함께....
1주일이 지난 후 병원에서 수술 전 엑스레이를 촬영했는데 사진을 본 의사가
“이 상황은 기적입니다. 골다공증이 거의 진행되지 않아서 금간 뼈에서 진액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환자 나이에 이 정도 부상이면 척추가 깨져서 하반신 마비거나 최소한 평생 통증을 지니고 살아야 하고 거기다가 핀을 박아서 영구적으로 장애를 안고 살아야하는데 자연치유 상태를 보이니 이 정도 큰 사고에 이런 경우는 의사생활 30년 가까이 하면서 처음입니다. 환자분이 그동안 꾸준한 운동을 한 것과 중형차였다는 게 도움이 되었지만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 그리고 조상신까지 합동으로 도와주었다고 생각하십시오.“
의사의 표현처럼 우리 부부는 천운으로 염라대왕과의 조우직전에 죽음에서 살아났었고 아내는 꾸준한 재활운동으로 사고 6개월 만에 완치판정을 받았다. 아직 작은 후유증은 남아있어서 장시간 산행은 힘들지만 3~4시간 정도의 산행은 하고 있고 간혹 골프도 치면서 ‘두 발로 걸으면서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이번 교통사고는 조심해도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인 경우였지만 우리 부부가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했던 것이 아내의 골다공증을 방지했고, 그 결과 하반신 마비라는 끔직한 장애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을 돌이켜보면......
공단이사장 선거 때 온갖 음해로 나를 괴롭힌 이들 때문에 장폐색이 왔었고 그로 인하여 위암 수술한 내 몸의 취약점을 알게 되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했던 운동이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고가 생긴지 3년이 가까워오는데 나쁜 사람 또는 나쁜 일이라도 ‘인생만사 새옹지마’(인생에 있어서 길흉화복은 항상 바뀌어 좋은 일도 나쁜 일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나쁜 일이 좋은 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란 사자성어처럼 때로는 삶에 긍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음을 체험한 사고였다.
그래서 오늘도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고 아주 작은 행복을 즐기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아내와 제주도 올레길 한 구간을 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