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회장님! 얼굴에 가벼운 화장이라도 하고 나오시지 그랬어요. 초대형 스크린에 얼굴의 잡티가 크게 잡혀서 보기가 좀 그렇네요."
이노비즈 협회장을 하셨던 한 미숙 회장님이 몇 년 전 대전 컨벤션 센터에서 1,000여명의 국내외 CEO 및 관계자가 참석한 글로벌 포럼 행사를 마무리하는 토크쇼에서 모더레이터 역할을 하고 내려온 나에게 했던 지적이었다.
나중에 녹화된 영상을 보니까 화면에는 잡티 많은 내 얼굴이 크게 확대되어 그대로 노출되고 있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아내의 도움을 받아가며 매일 화장하는 남자가 되었다.
1992년 대통령 선거는 김 영삼, 김 대중 거물정치인과 정치신인 정 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출마해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기존정치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때문인지 통일국민당을 창당한 정치신인 정 주영 회장의 인기는 한 때 하늘을 찌를 듯했고 정 회장의 당선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신문기사도 나오고 있었다.
선거 막바지에 TV에 나와서 정견 발표하는 시간이 대선후보들에게 주어졌는데 저녁식사하면서 정주영 회장이 정견발표를 하는 장면을 아내와 같이 집에서 보고 있었는데...
정 회장이 연설하는 모습을 보던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얼굴에는 검버섯이 가득한데다가 정견 발표하는 목소리의 발음도 부정확하고 바람 새는 소리까지 나는데 저래가지고 무슨 대통령하겠다고... 대통령 당선되면 임기 중에 돌아가실 수도 있겠네."
정주영 회장의 인기는 거기까지였다.
우리 부부의 생각만이 아니고 TV정견 발표를 본 지인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거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개표결과 76세의 정 회장은 큰 표 차이로 3등을 했고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노구의 정 회장 정견발표 장면은 뇌리에 강하게 자리 잡았다.
몇 년 후 대전 컨벤션 센터에서 글로벌포럼의 기조연설은 스티브 잡스와 애플을 공동 창업했던 스티브 워즈니악이 했고, 행사의 마무리 토크쇼의 모더레이터로 내가 출연했는데 포럼이 끝나고 난 후 토크쇼 진행을 잘 했다는 덕담을 듣는 자리에서 이노비즈 협회 전임회장이었던 한 미숙 회장님의 지적이 이랬다.
"성 회장님! 얼굴에 가벼운 화장이라도 하고 나오시지 그랬어요. 초대형 스크린에 얼굴의 잡티가 크게 잡혀서 보기가 좀 그렇네요."
대학시절부터 등산, 암벽등반, 둘레길 트래킹과 같은 아웃도어 운동을 즐겨했고 사회생활하면서 추가된 취미가 스쿠버다이빙이었는데 좋아하는 취미가 하나같이 햇빛에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는 운동이었기에 주말의 취미활동을 하고 나서 거울을 쳐다보면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빨갛게 익어있었다.
그렇지만 남자가 화장을 한다는 생각은 감히 해본 적이 없었기에 맨 얼굴로 초대형 스크린 앞에 노출되면서 받았던 지적이었다.
그날 행사에 참석했던 아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몇 년 전 정주영 회장의 정견발표 장면을 이야기하면서 화장을 해보라고 권유하였고 그 다음날 회사에 출근하는 내 얼굴에 색조 화장품을 가볍게 터치해주었는데...
거울에 비친 얼굴은 내가 생각해도 훨씬 젊어보였다.
나중에 이노비즈 협회장에 취임하면서 TV방송에 출연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촬영 전에 방송국의 전문 코디네이터가 화장을 해준 모습을 TV에서 보면서 내가 저렇게 젊게 보일 수도 있구나 싶었다.
혼자서 나르시스적인 만족을 하는 순간 정주영 회장의 화장 안한 맨 얼굴로 TV화면에 나온 모습이 문득 생각났다.
나이가 들어서도 사회생활을 지속하는 경우라면 세월의 무게로 어쩔 수 없이 추하게 보이는 얼굴을 가볍게 카무플라주하는 것이 타인과의 대화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어쩌다가 방송과 인터뷰로 TV 화면에 잡혔을 때도 시청자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예의가 아닐까 싶다.
방송에 출연하는 일이 종종 생기면서 나는 어느새 매일 화장하는 남자가 되었고 22년 가을 KBS 영상앨범 산(미국 노쓰 캐스케이드 국립공원, 글레이셔 국립공원 편)에 출연했을 때도 당연히 가벼운 색조화장 기능이 있는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출연했었다.
화장하는 김에 이번 가을에는 성형외과 의사인 막내 동생에게 얼굴 주름 없애는 필링을 부탁해서 조금 더 젊어져 볼까?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