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 대학산악회 산벗들과 오랜만에 삼악산 산행을 했다.
유난히도 빨리 찾아온 여름 날씨 덕분에 땀깨나 흘리는 오름길이었기에 산 이름에 ‘악’자가 있는 산은 다르긴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힘들게 산행했다.
삼악산은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북한강과 붕어섬 등 춘천의 아름다운 풍광으로 인하여 힘든 산행을 상쇄하고도 남는 산이다.
삼악산을 오르다 보니 문득 학창 시절 혼자서 삼악산 산행을 하면서 물 한 모금을 구하려고 들렀던 절에서의 불쾌한 경험이 생각나면서 비슷한 경험 두, 세 가지가 연달아 생각났다.
그래서 세 가지의 에피소드를 통해 자신이 있는 위치에 어울리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참고로 산 이름에 ‘악’자가 들어가는 산은 설악산, 월악산, 치악산, 운악산, 관악산, 감악산, 삼악산 등이다)
에피소드1
부처님과 물 한 모금
1979년 1월의 겨울 삼악산에는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겨울방학 기간에 혼자서 구곡폭포가 있는 봉화산과 삼악산을 연결한 산행을 하면서 봉화산을 산행한 후 삼악산 등선폭포를 지나 저녁 무렵에 개울가의 작은 평지에서 텐트를 쳤는데 부실한 방한복과 침낭으로 인하여 깊이 잠들지 못하고 밤새 추위에 떨다가 새벽 일찍 일어났다.
버너를 피우고 된장찌개와 밥을 해서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버너의 열기로 인하여 얼었던 몸이 많이 풀렸다.
배낭을 정리한 후 다시 산을 오르는데 차가운 겨울바람이 부는 삼악산에서 아침식사 준비로 물을 모두 사용했기에 마실 물이 남아 있지 않은 데다가 계곡은 겨울가뭄으로 바싹 말라있었기에 힘든 산행 길에 혼자서 무거운 5~6인용 텐트에 군용 닭털침낭까지 짊어지다 보니, 어깨는 점점 더 무거워졌고 갈증도 심해졌다.
다행히 오름길에 절이 있어서 마실 물을 구하고자 갔더니 절 샘터도 꽁꽁 얼어있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는 수없이 우물 터 옆의 공양간(절의 부엌)에 가서 문밖에서 물 한 모금을 청했더니 공양간에서 일을 하던 아주머니가 화를 벌컥 내면서 소리쳤다.
"아니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요. 썩 나가세요."
겨울 북풍한설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는데 어이가 없었다.
"보살님! 대웅전에서 부처님이 보고 계신다면 겨울이라 샘터가 다 얼어서 공양간에 와서 물 한 모금 청하는 등산객을 동냥하러 온 거지 내쫓듯 하는 보살님을 보고 무슨 생각 하실까요? 이 땅에 중생을 구하러 오신 부처님을 모신 절에서 목마른 중생이 물 한 모금 청하는 게 그렇게 욕을 먹어야 될 일인가요?"
그제야 변명이라고 하는 말이 "공양간에 등산객이 자꾸 들어오니까 그렇지요."
졸지에 공양간에서 물 한 모금 구하지 못하고 쫓겨나면서 볼멘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부처님! 보고 계십니까? 부처님께서 계신 절 인심이 어쩌면 이렇게도 야박하십니까?"
에피소드2
교회는 사유재산인가?
얼마 전 봄 벚꽃이 한창이던 때에 한 집에 같이 사는 초등학교 2학년인 손녀와 어린이집에 다니는 쌍둥이 손자들을 데리고 새벽 산보를 했는데 집 부근에 있는 교회의 교육관 정문 바로 안에 왕 벚나무가 아름답게 만개해 있었다.
손녀가 벚꽃을 보고 예쁘다면서 감탄하기에 잠시 벚나무 아래에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바로 그때 교육관 경비로 보이는 분이 나오더니 다짜고짜 "사유지에서 나가세요!"라고 소리친다.
그 소리를 듣고서 기가 막혀서 "여기가 사유지라고요? 하나님의 성전이 사유지라는 게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교회에서 아이들이 사진을 찍는다고 내쫓다니 교회가 맞습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 아니고 목사님의 성전입니까? 저도 교회 단체를 통해서 아프리카 케냐에 우물파기 후원을 하고 있는데 저처럼 교인들의 헌금으로 건립한 교회를 사유지라고 하는 건 이치에 맞는 말이 아니지요."
그랬더니 돌아오는 말이
"당신이 이 교회 다녀요? 나가라면 나가지 왜 이렇게 말이 많아. 어서 나가요."
벚나무 아래에 있는 손주들 사진 한 장 찍어주다가 할아버지가 봉변을 당하는 모습을 손주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손주들과 새벽 산보를 하고 있는데 그 경비 아저씨가 다가와서 사과를 한다.
"죄송합니다. 제가 여기 온 지 일주일밖에 안되어서 실수를 했습니다. 앞으로 마음대로 들어오셔서 사진 찍으셔도 됩니다."
아마도 어제 우리가 말다툼하던 모습을 목사님께서 보시고는 경비 아저씨에게 꾸지람을 한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히도 언쟁으로 인하여 교회에 대한 좋지 않은 느낌이 하루 만에 풀렸던 해프닝이었지만 신도들의 헌금으로 만든 교회에 귀여운 아이들이 와서 사진을 찍는다고 내쫓겼던 좋지 않은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에피소드3
병원의 따뜻한 물 한 잔과 차가운 말 한마디
오래전 건강검진을
위하여 서울의 종합병원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그때 아주머니 두 분이 카트에 각종
음료수와 차를 가지고 와서 순서를 기다리던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카트에 Hot Water라고 쓰여 있는 물통이 있기에 뜨거운 물 한 모금 마시기 위해서 다가갔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종이컵을 들고 Hot Water통으로 손을 가져가는 순간…
"물만 드시는 것은 안 됩니다."
고객들에게 무료로 음료수와 차를 나눠주시는 분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도저히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딱딱한 목소리가 내 손을 주춤하게 만들었다.
"아니 음료수도 무료로 주시는데 따뜻한 물 한잔 마시는 게 왜 안 됩니까?"
"그 물은 손님들에게 녹차를 타주기 위한 것이라서 뜨거운 물만 마시는 건 안 된다니까요."
어이가 없었다. 무료 음료수와 녹차는 되는데 물을 마시는 건 안 된다니…
짐작하건대 아마도 나처럼 물만 마시는 손님이 여러 명 있으면 자신들이 준비해온 뜨거운 물은 녹차나 커피를 타주기 위한 것이기에 물이 부족해진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지 싶다.
그렇지만 병원에서 무엇 때문에 많은 돈을 들여서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무료 음료수를 준비한 것일까? 그것은 환자와 보호자에 대한 고객 서비스 차원이 아니겠는가? 이런 일이 병원이 아니고 비행기 안이나 자동차 전시 판매장에서 그런 상황이 발생하리라고 상상이라도 할 수 있는가?
병원 측이 환자나 보호자에게 많은 비용(모르긴 해도 음료수, 종이컵, 아주머니 인건비를 포함하여 최소 하루 수십만 원은 들 것이다.)을 들여서 음료수를 무료로 나눠주는 호의적인 서비스에 대하여 경직된 사고로 행동하는 아주머니들로 인하여 받는 고객의 마음이 상처받는 것은 결코 병원이 원했던 바가 아닐 것이다. 자신이 고객에게 서비스를 해주는 위치에 있는 분들인데, 가지고 온 음료수와 녹차를 모두 소비해야 업무가 종료된다면 물 한잔 먹으려는 사람에게 "녹차를 타서 더 맛있게 드십시오." 하면서 봉지 녹차를 고객의 손에 쥐어 주는 배려를 하여야 옳은 고객 응대가 아니겠는가?
병원 측의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만든 배려 프로그램이 나의 기분을 잡치게 만들어서 씁쓸한 기분이 그날 하루 동안 계속해서 머릿속에 머물렀다.
문득 우리 직원들도 이와 같은 경직된 행동으로 인하여 고객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들은 없을까 생각해 보았다. 영업담당자는 한 개의 제품을 더 팔기 위하여 혼신의 노력을 하고 연구소에서는 고객이 요구하는 기능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끊임없이 고객과 스킨십을 해야 한다. 또한 고객이 사용하다가 기술 지원이 필요하거나 제품을 수리하기 위하여 전화를 하면 고객지원부서는 야간이라도 현장에 뛰어가야 하고 영업 관리 팀에서는 악성 미수금이 없게 하기 위하여 고객사에게 미수금 독촉도 하게 된다. 이와 같이 고객만족도 시키면서 회사의 목적을 완수하기 위하여 노력하다 보면 자신의 업무만 생각한 나머지 고객의 감정을 상하게 하여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킨 적은 없었을까?
우리 모두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에피소드3의 예에서 보듯 고객을 위한 좋은 프로그램도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행동하다 보면 고객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
'수많은 문제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일상생활에서 발생된 문제를 순차적으로 풀어나가는 능력을 갖춘 조직을 우리는 기업이라 부른다.'라는 경제학자의 말을 되새겨 보면서 우리가 속한 조직에서 고객과 함께 일을 하면서 생겨나는 문제를 고객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말과 행동을 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본분을 모르는 사람들이란 주제로 글을 써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