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서울 뚝섬에서 성남 상대원동의 테크노파크로 이전하면서 사는 집도 아내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회사와 가까운 전원주택으로 옮기게 되었다. 회사와 집이 가까우니 출퇴근하면서 교통지옥에 시달리지 않는 것은 좋았지만 전원주택이 주는 여러가지 괴로움도 생겼다. 그 중에 가장 힘든 일은 겨울철 마당에 내린 눈치우기였다. 참고로 우리 집은 네 가구가 연결되어 있는 소위 말하는 땅콩 주택 형태이다. 따라서 잔디가 깔려있는 마당은 네 가구의 마당이 같이 연결되어 있고 마당이 끝나는 지점부터는 바로 산이 시작된다. 그래서 집 사진을 찍으면 네 채가 연결되어 있어 마치 대 저택처럼 멋지게 보인다.
•겨울의 우리집 풍경
눈이 오면 우리 집 앞의 보도에서 시작해서 주차장과 큰 길까지 눈을 치워야 했다. 처음에 이사를 와서 보니 그동안 살고 있던 분들은 어찌된 연유에서인지 눈이 펑펑 쏟아져서 보도에 눈이 수북 쌓여도 나와서 눈을 치우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제법 많은 양의 눈이라도 내리는 날에는 새벽에 일어나서 나 혼자서 그 많은 눈을 한, 두 시간 동안 치우다보면 허리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다행히 둘째가 군대를 제대 한 이후부터는 눈 치울 때 힘을 보태주었고 최근에 새로 이사 오신 옆집 아저씨가 눈 치우는 것을 도와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다.
눈이 쌓이는 겨울이 되면 또 다른 불청객이 우리 집을 찾아오곤 했다. 그 불청객은 바로 고라니다. 저녁에 손님을 만나고 밤 10시가 넘어서 늦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마당을 지나 집 앞까지 가는데 갑자기 후다닥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다. 뭔가 싶어 쳐다보니 커다란 고라니가 산속으로 달아나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산에 눈이 쌓여 있으니 먹을 것이 모자라 우리 집 마당 귀퉁이의 정원을 헤집고 말라비틀어진 풀잎사귀를 뜯어먹은 것으로 보였다. 고라니를 멀리서 보게 되면 노루와 비슷하게 생겨서 귀엽게 보이지만 막상 바로 앞에서 맞닥뜨리게 되면 하얀 어금니가 밖으로 툭 튀어 나와서 상당히 징그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놈이 후다닥 소리를 내며 내 앞을 지나서 숲속으로 도망쳐 갈 때는 마치 도둑이 뭘 훔치다가 갑자기 도망가는 형국이라, 무심코 걸어가다가 깜짝 놀라게 된다.
눈이라도 많이 온 날이면 산속에 눈이 쌓여서 풀 찾기가 쉽지 않아서 눈을 치워 놓은 마당 귀퉁이의 정원에서 풀을 뜯어먹기가 훨씬 수월한가도 싶었다. 아무리 짐승이라도 배고파 내 집 앞에 온 걸 박정하게 물리칠 수 있나 싶어, 또 고라니가 들락거리는 집이니 자연에 묻혀 지내는 느낌이 바로 이것이다 싶었기에, 때로는 고구마나 채소 푸성귀를 마당에 두곤 했다. 눈 내리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서 아내는 정원에 튤립뿌리를 심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날이 따뜻해져서 땅이 물렁물렁 해지면 어느 틈에 내려와서는 튤립 뿌리를 그 징그러운 이빨로 캐내서 먹어 버렸다. 속이 상한 아내는 고라니로부터 튤립을 지키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거듭했다. 결국 철망울타리를 치는 데까지 이르렀고, 그 결과 몇 개 남지 않은 뿌리로나마 어느 정도 꽃을 피우는데 성공했다. 그 이후에 아내가 정원과 산이 연결되는 짜투리 땅에 상치와 고추를 조금 심고 나서부터는 녀석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내려와서는 상추, 고추의 연한 잎사귀도 마구 뜯어 먹어버렸다. 잎사귀를 다 뜯어 먹어버리니까 고추가 달릴 리가 있나? 그러다보니 고추 농사는 완전 폐농. 상추도 고라니가 대부분 뜯어 먹어버렸으니… 거기다가 밤에는 이놈들이 숲 속에서 사랑을 나누는지, 아니면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는 소리를 내는지는 모르겠으나 밤새도록 “꾸에엑! 꾸에엑!” 거리며 엄청나게 큰 소음으로 울어대는 통에, 잠을 완전히 설치기도 하였다. 조용한 전원주택이라고 좋아했더니 엉뚱한 불청객이 내는 소음으로 인하여 곤욕도 그런 곤욕이 없었다. 다행히 이 소음도 발정기가 지나면 조용해지니까 한, 두 주일만 이불 뒤집어쓰고 견디면 되니까 어쨌든 참을 만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는 이런 웃기는 일도 있었다. 아내와 같이 정원을 가꾸고 있었는데 집 앞 산비탈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뛰어나오는 소리가 나더니 숲속에서 우리가 있는 정원 바로 옆 마당으로 조그만 고라니 새끼가 훌쩍 뛰쳐나왔다. 사람이 있는 것을 알아차린 고라니 새끼는 기겁을 해서 다시 숲속으로 도망을 쳤는데 도망간 놈과 크기가 같은 형제 고라니가 뒤따라서 마당에 뛰어내리면서 착지를 잘못했는지 잔디 위에 벌러덩 자빠졌다. 아내가 놀라서 “어머! 어머!“ 하는 소리를 듣고는 넘어진 녀석도 놀라서 허겁지겁 갈팡질팡하더니 후다닥 일어나서 형제 고라니가 도망간 숲속으로 뛰어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고라니 형제의 해프닝이다. 아마도 엄마가 먹을거리를 구하러 나간 사이에 형제들끼리 술래잡기 놀이를 했던 것 같았다. 아내와 정원 일을 하다말고 하도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쳐다보다가 쓸개 빠진 사람처럼 킥킥거리며 웃었다. 그러고보니 우리 집 앞 조그만 야산 줄기는 지난번 꾸에엑 거리며 발정을 하던 고라니가 출산을 하여, 그 새끼들의 천국이 된 것 같았다. 또 다른 황당한 일은 전원주택 생활 3년차인 재작년 가을에 일어났다. 가을이 조금씩 깊어가던 주말에 친구들과 북한산 등산을 끝내고 집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바깥에는 오후 늦은 시간부터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밖에서 앙칼진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아내에게 고양이 소리가 나는 것 같다고 했더니 아내의 대답인즉슨, 오후에 정원을 가꾸고 있었는데 숲속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가 자꾸 나는 것 같기에 숲 쪽으로 가 봤더니 정원과 숲의 경계선 부근에 태어난 지 얼마 안된 아주 조그만 고양이 새끼 한 마리가 울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정원과 산의 경계에 새끼고양이가 버려져 있었다.
아내는 어릴 적에 미친개에게 물린 이후(다행히 미친 여자는 안되었는지 나랑 살면서 나를 물거나 해괴한 짓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로 개와 고양이 같은 동물들을 싫어해서 기겁을 하고서는 그대로 팽개쳐두고 정원 일을 계속했다고 한다. 그런데 저녁에 집에 온 아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는 고양이를 집 테라스 바로 앞의 스티로폼 박스에 넣어 뒀다고 한다. 아내가 “고양이 엄마가 데려갈 테니까 아까 그 자리에 그냥 두라.”고 했는데도 아들은 “아버지가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고 이야기했는데 차가운 가을비를 맞는 고양이 새끼는 그대로 두면 죽게 된다.”면서 스티로폼 통에 담아서 비를 안 맞게 우산을 씌워 두었다는 것이다.
저녁을 먹은 후 나가 봤더니 태어난 지 1주일도 안되었을 조그만 새끼 고양이가 악을 바락바락 쓰면서 울고 있었다. 소리는 제법 컸지만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빌빌거리는 모습이 그대로 뒀다가는 오늘밤을 못 넘기고 저 세상으로 갈게 뻔했다. 아들에게 고양이를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오게 한 후 병원에 데리고 가서 건강 진단 후 분유와 젖병을 사오게 했다. 평소에 동물을 좋아하는 아들은 아버지 이야기를 듣고는 신이 나서 며느리와 같이 동물병원에 다녀왔다. 병원 수의사 이야기로는 못 먹어서 비실비실하긴 하지만 아직 건강상에는 큰 문제는 없는데 고양이 등에 진흙 비슷한 게 게 묻어 있는게 보이는데 이게 진흙이 아니고 아주 작은 구더기 무리라고 하면서 조금만 시간이 더 경과 되었다면 구더기가 살 속을 파고 들어갈 뻔 했다면서 구더기를 깨끗이 다 제거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길을 잃어버렸는지 아니면 어미가 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새끼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거의 10만원 가까운 돈이 들어갔다. 인터넷에서 ‘고양이 새끼 키우기’를 찾아본 아들이 고양이 새끼는 혼자서 대소변을 못 가리기 때문에 휴지로 아랫도리를 살살 건드려서 자극을 줘야 대소변을 누게 된다고 했다. 다행히 아들이 먹이주기와 아랫도리 자극하기로 고양이 새끼를 잘 돌봐주었고, 2~3일이 지나니 제 법 팔팔해져서 우는 소리도 점점 커져갔다. 어미가 다시 데려가라고 마당 귀퉁이의 숲 쪽에 스티로폼 박스를 두고 그 녀석을 담아두었는데 어미란 놈이 분명히 숲속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2층 테라스에서 몇 번 봤고 새끼가 우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도 한번 버린 새끼는 다시는 데려가질 않았다. 우리 집에서 키울까 생각도 해봤지만 아내가 워낙 고양이를 싫어하는데다 나도 동물을 키우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페이스북에 올려서 무료 분양하기로 했다.
•좌)첫번째로 버림받은 길고양이 새끼와 (우)두번째로 버림받은 길고양이 새끼
다행히도 고양이는 오드(odd)라고 불리는 눈 색깔이 좌우가 비대칭인 아주 예쁜 녀석이었다. 덕분에 분양은 불과 몇 시간 만에 손쉽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틀 후 아침에 출근을 하는데 며칠 동안 고양이가 문 앞에서 울어대는 소리를 들어서인지 고양이 울음소리 같은 환청이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중에 봤더니 이게 환청이 아니었다. 점심 때 쯤 며느리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고양이 새끼 또 한 마리가 정원 바로 경계선에 내버려져 있다고 했다. 이런 일이 왜 자꾸 생기나해서 인터넷을 뒤져봤더니 고양잇과 동물들은 새끼들 중에 엄마 젖을 차지하는 싸움에서 밀려서 빌빌거리는 놈이 있는 경우에 어미는 나머지 건강한 새끼들을 살리기 위해서 내다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고양이도 우리 집에 왔을 때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이번 고양이도 저녁에 집에 가서 보니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고, 눈병이 있는지 눈도 제대로 뜨질 못했다. 지난번 새끼 고양이를 무료 분양할 때 구입한 분유와 젖병을 죄다 공짜로 딸려 보낸 탓에 다시 한 번 구입해야 했다. 그런데 어미가 새끼를 버리면서도 그냥 깊은 숲속에 버리질 않고 하필이면 인간이 볼만한 곳에 버리는 것도 어쩌면 인간이 자기 새끼를 챙겨서 살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구나 싶은 생각에 미치니, 고양이 어미의 영악함에 탄복이 절로 나왔다.
어쨌든 두 번째 고양이도 먼저 버림을 당했던 형제가 살았던 바로 그 스티로폼 박스에서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 녀석은 워낙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스티로폼 박스의 귀퉁이에 죽은 듯이 조용히 처박혀 있었다. 저래서는 살아날까 싶었는데 이틀 정도 분유를 열심히 먹이고 대소변도 잘 가누게 했더니 다시 우리 집 앞마당은 찢어지는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안질환으로 눈을 제대로 못 뜨고 있기에 혹시나 싶어서 집안에 굴러다니던 오래된 항생제 안연고를 찾아서 발라줬더니… 바로 그 다음날 아침에 보니까 눈을 또록또록 뜨면서 팔팔해져서 스티로폼 박스 벽에 고양이 특유의 날카로운 발톱 자국을 내면서 밖으로 기어 나온 후 온 마당을 헤매고 다녔다. 그런데 체구로 봐서는 지난번 오드 고양이와 형제 사이가 분명한데도 온갖 야생 고양이들이 일부일처제를 지키지 않고 제멋대로 붙어 먹었는지 이놈은 털색이 누리끼리한 게 별로 예쁘지 않았다. 다행히도 옆집 할머니가 보시고는 가까운 친척 아줌마가 키우던 고양이가 얼마 전에 죽어서 상심하고 있다면서 연락을 했다고 했는데 소식을 듣고는 득달같이 달려와서 보고는 죽은 고양이와 똑같고 귀엽다면서 바로 가져가 버렸다. 우리가 다시 사놓은 분유와 젖병까지 공짜로 몽땅… 두 마리의 생명을 살리느라 이래저래 예상치 못한 돈이 들어갔지만 죽을 놈들을 살려내고 나니 마음이 뿌듯했다.
올해 일기예보에 이번 겨울은 엘니뇨의 영향으로 눈이 많이 올 거라고 한다. 아무래도 이번 겨울에는 눈 때문에 고라니와 새끼들이 굶어죽지 않게 고구마와 푸성귀라도 넉넉히 내다 놓아야겠다. 그러면서도 내년 여름과 가을철에 고양이가 또 새끼를 우리 정원 부근에 내다버릴까 싶어 걱정이 된다. 다음에 또 그런 일을 당하면 분유와 젖병은 새끼고양이 무료 분양할 때도 집에 둬야겠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피식 웃는다. 산 아래 전원주택에서 생활하면서 도저히 경험할 것 같지 않은 엉뚱한 일을 당하기도 하지만 생명에 대한 사랑을 느끼는 기회도 가질 수 있어서 점점 이 생활이 즐거워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