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어느 정도 사랑해야 혹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했다고 할 수 있을까? 자기 신체의 일부를 떼 주거나 거금을 기부하는 큰 사랑이 아니더라도,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우리 이웃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다면, 아주 작은 관심에도 사랑이란 표현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여기 ‘사랑은 행동이다’라고 말하기에 적절한 아주 작은 사랑 이야기가 있다.
중앙대가 있는 흑석동 방향에서 차를 운전해서 올림픽대로에 진입하려면 동작동 국립현충원 앞의 T자 길에서 신호등을 받아서 좌회전을 해야 한다. 회사가 신림동 사거리 부근에서 셋방살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을 때, 뚝섬에 있는 거래업체와 업무협의 차 갔다가 거래업체 사장의 권유로 부근에 있는 아파트형 공장을 갑자기 계약하게 되었다. 그때 회사에 여유자금이 충분치 않았지만 회사자금 일부와 우리 가족이 살고 있던 신림동 산동네인 난곡에 있던 작은 아파트를 팔아서 부족한 자금을 일부 충당하기로 하고 급작스레 계약을 했던 것이다. 공장의 대금을 치르기 위하여 살고 있던 아파트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새로 살 집(아파트)을 얻어야 했는데 뚝섬에 새로 계약한 아파트 형공장에 입주한 뒤 출퇴근하기 쉬운 장소로 뚝섬과 다리 하나만 건너면 있는 잠실역 부근의 주공 5단지에 전세를 얻었다. 그러다보니 아파트형 공장에 입주하기까지의 1년 남짓 동안은 신림동 네거리에 있는 회사와 잠실의 아파트까지의 제법 먼 거리를 아침저녁으로 올림픽 도로를 통하여 승용차로 출퇴근을 해야 했다.
그런데 저녁에 퇴근을 할 때마다 아주 조심을 해야 하는 곳이 있었으니… 특히 가을부터 이른 봄까지의 해가 짧은 계절에, 깜깜해져서 퇴근을 하게 될 때가 가장 위험했다. 서두에 언급했던 중앙대 방향에서 오다가 국립 현충원 앞에서 올림픽 도로로 접어들기 위해서 좌회전을 한 후 400~500미터 위치에 있는 지점이었다. 이 자리를 다시 설명하면 올림픽 대로에서 대로 아래의 지하도로를 통해서 국립 현충원 방향으로 오는 길과 현충원에서 올림픽 대로로 진입하는 길이 만나는 위치에, 양쪽 방향 높이가 다른 지점이다. 높이가 다른 양방향 길이 만나는 사이에 교각이 있었는데 저녁에 여기를 통과하다보면 교각에 차가 충돌하여 교각의 철 구조물이 손상된 흔적을 보이거나 자동차 파편이 주변에 흩어져 있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었다. 그 빈도가 빠를 때는 며칠에 한번 꼴이고 보통은 평균 한 달에 두세 번은 새로운 사고로 생긴 흔적을 보곤 했었다. 따라서 이 지역을 통과 할 때는 차의 속도도 줄이면서 아주 조심해서 운전을 하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사고위치를 머릿속으로 인지하면서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는데도 어떻게 된 일인지 교각 바로 근처에 와서야 교각을 발견하고 깜짝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옆자리에 앉은 아내와 이야기를 하거나 다른 생각을 하면서 이 지역을 통과할 때면, 갑자기 나타난 교각으로 인하여 화들짝 놀라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하면서 보니 교각에 커다랗고 노란 점멸등이 세워져 있었다. 관할이 어딘지는 몰라도 사고가 빈번히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린 구청에서 점멸등을 세워서 교각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위험 지역을 지날 때 마다 노란 점멸등을 먼저 확인하면서 운전을 했기에 깜짝 놀라는 경우는 별로 없었고 다른 차들도 점멸등으로 인하여 사고가 안 일어나겠다 싶었다. 하지만 결과부터 이야기하면 빈도는 그 전보다 많이 줄어들었지만 역시 사고는 심심찮게 발생했다. 때로는 대형차량이 교각을 들이 받았는지 황색 점멸등 자체도 박살이 나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왜 사고가 저렇게도 많이 나는지 그 원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매일 저녁에 같은 지점을 통과하는데도 왜 교각이 잘 보이지 않는지, 원인이 뭔지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저녁시간 뿐만 아니라 토요일 오전 근무(1990년대 초였기에 그 시절에는 토요일도 오후 3시까지 근무 했다.)하고 밝을 때 통과하면서도 관찰을 했다. 그렇게 몇 번 주의를 기울여 관찰했더니 그 원인은 너무도 쉽게 나왔다. 저녁시간에 국립 현충원 주위는 아주 밝은 가로등이 대낮처럼 환하게 켜져 있었고 차 진행 방향인 올림픽대로에도 가로등이 켜져 있었는데 유독 현충원 앞의 T자 길에서 좌회전한 후 올림픽 대로에 접어들기까지의 약 700~800미터구간에는 가로등이 없어서 아주 캄캄했다. 밝을 때 확인한 바로는 가로등이 없는 게 아니었다. 가로등은 있었지만 단 한 개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이 지점만 밤에 가로등이 모두 꺼져있었던 것이다. 야간에 현충원 앞길의 가로등이 무척 밝다. 또 올림픽대로의 가로등도 대낮같이 밝다. 그런데 현충원 앞길과 올림픽대로를 이어주는 연결도로만 유독 어둡다. 때문에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현충원 앞길에서 운전자의 눈조리개가 밝음으로 인하여 잔뜩 닫혀 있는 상태로 있다가, 연결도로로 접어들면서 주변이 갑자기 어두워지는데도 눈의 조리개가 미처 적응을 못했던 것이다. 바로 그것 때문에 일어나는 사고였다. 이렇게 단순한 문제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부상을 입고 차도 망가지는데 이 지역을 담당하시는 분들은 문제가 뭔지 현장에 나와서 제대로 체크나 했을까 싶었다. 혹 그 다음날 날이 밝은 후에 와서 “평범한 길에서 왜 자꾸 사고가 나지” 하면서 고민하다가 해결책으로 황색 점멸등을 설치하고는 운전자들이 운전 부주의로 자꾸 사고를 낸다고 생각하고 있진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화가 났다.
지도책을 찾아서 그 지역을 담당할 것 같은 구청에 해당지역의 자세한 약도와 사고가 나는 이유에 대한 설명서를 작성해서 우편으로 발송했다. 그런데 며칠 후 그 구청에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이 보내신 자료를 확인했는데 그 지역은 우리 관할이 아니고 옆 구청 관할이니까 수고스럽겠지만 그 구청으로 자료를 다시 보내주십시오.”라는 아주 친절하면서도 공직자다운 답이었다. 순간 입에서 하마터면 큰소리가 나올 뻔 했다. 왜 그것을 국가의 녹을 먹고 있는 공직자가 수고 해주면 안되고 민원인에게 다시 연락을 하라고 시킨단 말인가?(최근 서해에서 낚시 배가 다른 배에 추돌당해서 전복된 사고가 있었다. 배안의 에어 포켓에 대피해 있던 분들이 스마트 폰으로 해경에 사고 신고를 했지만, 해경에서 전화를 받던 분의 응대하는 자세는 내가 경험했을 때와 비슷했다. 그 음성 녹음된 파일을 들으면서 20여 년 전의 그 분이나 지금이나, 공직에 있는 분 중에는 왜 이렇게도 생각을 바꾸지 않는 분들이 여전히 있나 싶었다.) 민원을 즉각적으로 친절하게 잘 처리 하시는 공직자가 대부분이고 그런 경우에는 민원인의 불만이 없으니까 그대로 묻혀버리겠지만, 어쨌든 내 일이 아닌데도 문제를 분석해서 자료를 보냈고 대한민국 국민들이 재산상의 손실은 말 할 것도 없고 부상을 입거나 죽어가는 데도, 그 분이 해당 구청으로 연락을 해서 상식선에서 빨리 처리해 줄 수 있는 사항을 민원인에게 관할이 아닌 구청에 잘못 보냈으니 해당 구청에 다시 보내라는 이야기를 하는 데는 너무도 감동(?)해서 할 말을 잊을 지경이었다.
최근에 네이버 지도에서 그 지역을 다시 확인해보니 상식적으로는 분명 A구청 관할 지역인데 주소는 B구청 지역으로 나왔다. 그러다보니 가로등이 꺼져있어도 해당 구청은 관할의 사각지대에 있어 제대로 점검을 못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똑같은 자료를 다시 정리해서 보냈더니 해당 구청에서 전화가 와서 자세히 물어보기에 그 지역 위치를 알려주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설명 드렸다.
•동작동 일대 도로망(다음지도)
그러고 나서 며칠 후 T자 삼거리를 통과하면서 보니까 내가 지적했던 지역의 가로등도 주변의 가로등처럼 환하게 켜져 있었고 따라서 교각 주변을 쉽게 인지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로등으로 인하여 사고의 위험을 최소화 시켜준 덕분에 그날 이후부터 회사가 뚝섬으로 이사를 와서 더 이상 그쪽 길을 자주 가지 않게 되기까지 나도 편하게 운전을 했을 뿐만 아니라 그 지점에서 단 한 번의 교각 충돌사고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의 작은 관심에 따른 민원으로 여러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줬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마음이 뿌듯하다.
요즈음은 회사와 집을 모두 성남으로 이전한 탓에 어두운 시간에 그 지역을 통과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지금은 가로등이 환하게 켜져 있는지 아니면 또다시 꺼져 있는지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그 지역을 자주 지나시는 분들은 국립현충원에서 올림픽도로로 접어들기까지의 길에 있는 가로등의 상태를 유심히 관찰하셔서 혹시라도 가로등이 꺼져있으면, 구청에 전화라도 한번 해주시기 바란다. 그것이 이 땅에 함께 사는 수도 서울의 대한민국 국민을 교통사고의 위험에서 지켜주는 행동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런 것도 인간 사랑의 작은 실천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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