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우웅~~” 새벽에 아파트 안방 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는 순간, 내 눈앞을 스치면서 날아가는 작은 물체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런데 거실에는 이런 녀석들이 한, 두 마리가 아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매미였다. 매미 열댓 마리가 날아다니거나 바닥에 떨어져서 어기적어기적 기어 다니고 있었다. 둘째 아들 녀석이 어제 저녁 여기저기 거실 나무나 화초에 붙여놨던 굼벵이가 탈피한 놈들임이 분명했다. 그 녀석들로 인해 갑자기 거실은 매미왕국이 되었다.
둘째는 어릴 적부터 곤충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둘째가 어릴 때 신림동 난곡의 삼성산 줄기 산비탈에 있는 서민아파트에 12월초에 입주를 했다. 아파트 단지를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산속 약수터까지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 날씨가 포근한 날이면 아내와 같이 배낭에 물통을 지고 호암사까지 가벼운 등산을 한 후 물을 떠서 내려오곤 했다. 때로는 운동 삼아 첫째와 둘째 아들을 데리고 약수터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봄이 되자마자 아파트 뒷산은 여러 나무가 경쟁하듯 싱그러운 연두색 잎사귀를 내밀어 3개 동의 작은 아파트 단지는 전원주택 분위기까지 풍겼다.
그 시절에는 내가 위암수술을 받은 후 아직 건강이 회복되기 전이었다.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잘 안되어서 매우 힘들 때였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만, 왕복 40분 정도 걸리는 약수터까지 걷기는 당시의 내 체력 회복에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5월의 뜨거운 햇살로 봄이 조금씩 무르익어가면서, 아이들과 함께 산에 가면 그때 4살도 안된 둘째의 눈동자는 날아다니는 곤충을 보면서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둘째는 엄마에게 떼를 써서 잠자리채와 곤충 채집통을 손에 넣었다. 그 후부터는 유치원을 다녀온 오후에는 집에서 사라져서 뒷산을 여기저기 돌아다니곤 했다. 그때부터 온 집안엔 사마귀부터 시작하여 우리나라 산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곤충들이 우글거렸다.
사마귀는 생긴 몰골도 흉측하지만, 암컷은 짝짓기를 하다가 오르가즘에 도달하면서 정신이 혼미해서 꿈속을 헤매는 수컷의 머리통을 잡아채서 괴상하게 생긴 입으로 우적우적 먹는 엽기적인 곤충이다. 나는 흉측한 외모에 덩치에 비하여 앞발 힘도 상당히 강한 사마귀가 징그러워 손으로 잘 잡질 못한다. 그런데 둘째는 그 나이 때부터 다른 곤충은 말할 것도 없고 사마귀까지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고 만지고 주물럭거렸다. 아내는 곤충들을 무척 싫어해서 집안에서 사마귀라도 푸드득 거리면서 날아다니면 기겁을 해서 “우왁~~” 하고 소리를 쳤는데 그것을 보곤 그 쬐그만 악동 녀석은 낄낄대며 웃어대곤 했었다.
한번은 주말 아침에 식사를 끝내고는 잠자리채를 들고 산으로 올라가는 녀석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 또 여러 놈의 곤충들이 희생이 되겠구나 싶었는데… 나간 지 한 시간도 안되어서 아파트 단지가 떠나가도록 울어대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언제나 익숙한 둘째였다. 잠시 후 들어온 녀석은 곤충을 잡다가 비탈에서 넘어졌는지 반바지를 입은 무르팍에서는 흙과 피가 범벅이 되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놀란 표정의 아버지와 엄마를 본 녀석은 더 큰소리로 울어대기 시작했다. 우는 녀석을 쳐다보니 얼굴은 안보이고 커다랗게 벌린 입속의 목젖만 보이는 것 같았다. 땀과 흙으로 얼룩진 얼굴과 다친 무릎을 아내가 씻기고 알코올로 소독하고 연고도 발라준 후 소란은 끝났다. 그리고는 한 시간 정도 되었을까? 자기 방에 있는 줄 알았던 녀석이 언제 밖엘 나갔는지 특유의 요란한 울음소리가 아파트 창밖으로 또 들리는 것이었다. 급히 베란다로 나가봤더니 잠자리채와 채집망을 손에 든 둘째가 틀림없었다. 꼬락서니를 보니 또 넘어져서 무릎을 깨서 오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아파트 단지 뒷산은 도시의 산이기는 해도 경사가 급해서 녀석에게 곤충을 잡아주려고 길이 아닌 비탈진 곳으로 들어가 보면 등산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나도 중심잡기가 만만치 않은 지역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들어온 녀석의 무릎에서는 또 피가 흐르고 있었고 울음소리는 집안을 쩌렁쩌렁 울리게 했다. 다시 엄마가 구급약을 발라주고 다독거려줬더니 녀석은 방에 가서 다양한 곤충들이 나와 있는 도해집을 보고 있었다. 이것으로 그날의 해프닝이 끝났으면 다행이련만…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어느새 또 나갔는지 한 번 더 무릎을 깨서 집에 들어온 것이었다. 목젖은 처음보다 더 크게 보였고 녀석의 채집망에는 포로가 된 불쌍한 곤충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반나절 동안 무릎을 세 번이나 깬 녀석이 엄마가 준 알사탕을 물고 자기 방에서 곤충 도해집을 보는 것으로 그날의 무르팍 깨기 해프닝은 끝이 났다. 기가 차서 어디서 저런 이상한 놈이 나왔나 하면서 혀를 찼더니, 아내가 하는 말 좀 보소. “그 씨를 뿌린 인간하고 어쩌면 저렇게도 똑 같을까요? 위암수술하고 퇴원해서는 보름도 안되어서 뒷산 갔다 온다고 거짓말하고 혼자서 설악산 종주를 하지 않나? 그 나이에 후배들이 암벽등반 가자고 전화오면 그때부터 뭐가 좋은지 실성한 사람처럼 좋아서 히죽거리고, 입이 잔뜩 나온 마누라는 아예 염두에도 안두고 쫓아가질 않나” 괜한 말을 꺼냈다가 본전도 못 건진 하루였다. 그러다가 신림사거리에 있던 회사가 뚝섬으로 옮겨가면서 사는 집도 난곡에서 잠실 5단지에 전세를 얻어서 살게 되었는데… 그해 한여름 밤에 더위도 식힐 겸해서 한강고수부지로 가는 보도를 걷다보면 여기 저기 나무에 7년의 시간을 인고한 굼벵이가 한, 두 마리도 아니고 큰 나무마다 여러 마리씩 떼거리로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어떤 나무에는 수 십 마리가 떼를 지어 기어 올라가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다음날 출근길 아침에 자나가면서 보면 나무엔 굼벵이가 남겨둔 허물만 여기저기 걸려있고 그 많던 굼벵이들은 어미 매미가 되어 사라져버린 후였다.
거실이 매미 왕국이 되어버린 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그 전날 저녁에 퇴근을 했더니 둘째가 밤에 나가서 굼벵이 열 댓 마리를 잡아서 집안의 작은 화초나 행운목의 기둥 뿐 만 아니라 부겐베리아 같은 가느다란 나뭇가지에도 잔뜩 붙여 놓았었다. 이놈들이 밤사이에 대부분 탈피를 한 후 새벽에 거실 전체를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날 아침 내가 회사에 출근을 하면서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게 실수라면 실수였다. 저녁에 집에 와보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하루 종일 집안 거실에서 붕붕 날아다니던 놈들은 대부분 죽어버렸고 그 중 두세 마리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서 바닥에서 간신히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매미들의 떼죽음을 가져온 장본인은 방에 들어가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거실엔 보이지도 않았다. 둘째를 거실로 불렀다. 방안에서 외삼촌이 사다준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신나게 놀던 녀석이 나왔다. 그리곤 내가 매미 시체를 가리키며 이야기를 했다. “제현아! 저 매미들은 3년~7년 동안 캄캄한 땅속에서 살다가 천적을 피해서 밤에 나무로 기어 올라가던 녀석들이다. 굼벵이들이 적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무사히 탈피를 해서 매미가 되면 나무의 진액을 빨아먹고 원기를 회복한 후 불과 일주일 정도의 짧은 시간에 수컷은 암컷을 만나서 사랑을 나누려고 여러 날 동안 나무에서 맴맴 울어댄단다. 마침내 서로 사랑을 나눌 짝을 만나면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으면 그것으로 자신들이 세상에 나와서 해야 할 일을 마치게 된단다. 그리곤 생명체라면 피할 수 없는 죽음이란 길을 떠나게 되지. 그런데 네가 굼벵이를 잡아와서 집에다 둔 것까지는 그렇다 치고 네가 유치원을 가면서 이 녀석들을 밖으로 보내주지 않는 바람에 모두들 짝짓기도 하지 못하고 이렇게 죽어버렸다. 이 일에 대하여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둘째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했는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죽은 매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에 둘째는 또 굼벵이를 잔뜩 잡아다가 집안 여기저기에 붙여 두었다. 다음날 아침에 굼벵이는 탈피를 해서 붕붕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아침 식사를 하면서 저것들을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기로 했고, 만일 출근할 때까지 그대로 두면 잔소리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후다닥 밥을 다 먹어치운 녀석은 바닥이나 유리창에 부딪혀서 떨어져 있거나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놈들을 베란다 창문을 열고는 한 마리씩 차례로 날려 보내는 것이었다. 며칠 전에 들었던 나의 훈계로 둘째는 생명의 소중함과 그 역할에 대하여 분명히 인식을 한 것 같았다.
먹기 위해서나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와 같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생명을 죽이는 경우는 모르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살생을 하는 것은 최소한 나의 경우에서는 용납이 되지 않는 행위다. 그렇기에 둘째에게 그렇게 이야기 했었고… 아들도 그날 이후로는 곤충 등의 생명체를 잡아서 가지고 놀다가도 저녁에 자기 전에 다시 놓아주었다. 그것을 보면 마치 내가 감방에 갇혀 있다가 풀려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사랑이란 우리 가족과 우리 집의 반려동물을 넘어서 이 세상 모든 생명체를 소중히 생각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것이 아닐까? 자식을 키우면서 나도 성장하고 자식도 성장한다. 매미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별 것 아닌 미물이지만, 매미 자체는 우리와 같은 완전한 생명체다. 매미를 통해 자식 교육까지 할 수 있었으니, 그날 둘째가 잡아온 굼벵이는 아들에게 생명사랑을 일깨워 준 스승이라 해도 되겠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을 배우고 가르친다. 작은 것이면 어떠랴. 나는 사랑을 가정에서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랑들이 모여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하고 행복하게 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