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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칼럼



《사랑은 행동이다》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19-02-18 13:42 2,472회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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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야기다.

 어느 날 아침에 등교해보니 우리 반 뒤쪽에 있는 작은 도서함의 유리창이 깨져 있었다. 다들 담임 선생님께 혼나게 생겼다면서 저 유리창 누가 깼을까 하면서 수군수군하기 시작했다.

 반에서 평소에도 툭하면 나를 괴롭히던 주먹깨나 하는 급우가 있었다. 그 녀석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저 유리창은 명기가 깼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친구가 “너 왜 유리창을 깼냐”라고 나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졸지에 유리창을 깬 범인으로 몰린 나는 절대로 도서함 유리창을 깨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어제와 오늘 사이에 도서함 근처에도 간적이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두 명이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그때부터 우리 반 급우들은 돌아가면서 내가 유리창을 깨뜨린 게 확실하다면서 나를 범인으로 지목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순간 확실한 왕따가 되어 버렸다.


 이 친구 저 친구가 나를 지목하니 나중에는 “내가 진짜 유리창을 깨트린 범인인데 깜빡하고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하게 되면서 스스로 사고의 혼란까지 오는 상황이 되었다.

 얼마 후 담임 선생님이 교실에 오자 반장이 어제 방과 후부터 아침 사이에 도서함 유리창이 누군가에 의해서 깨졌다고 보고했다. 평소에도 무섭기로 소문이 났던 담임 선생님은 화가 잔뜩 나신 얼굴로 특유의 잔기침을 하시면서 “도서함 유리창 누가 깼냐”라고 하자 급우들은 하나, 둘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무언으로 나를 지목하기 시작했다.

 소문에 의한 집단 폭력을 경험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제가 절대로 깨지 않았다고 말씀드렸다.

 그때 담임 선생님께서 강한 목소리로 말씀하시길,

 “우리 반 학생 중에 명기가 유리창을 직접 깨는 순간을 확실히 목격 한 사람이 있으면 나오라”라고 하셨다. 당연히 목격했다는 친구가 한명도 없었다. 그러자 담임 선생님이 큰 목소리로 꾸지람을 하셨다.

 “깨트린 것을 보지도 않고 짐작으로 친구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아주 나쁜 짓이다. 우리 반 친구 중에 분명히 유리창을 깨트린 사람이 있을 텐데… 그 친구는 자기가 그런 짓을 해놓고 지금 시치미 떼고 있다.”

 우리 담임 선생님은 오랜 교사생활을 하신 베테랑 선생님이셨다. 지금 생각해봐도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아시는 분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서도 짧지만 강렬한 아픔을 줬던 그 순간이 종종 기억의 저편에서 되살아나서 머리를 흔들면서 잊으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우연히 손에 쥐게 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으면서 싱클레어를 괴롭히던 크로머에게서, 평소에 나를 괴롭혔을 뿐만 아니라 유리창 깨트린 범인이라고 지목했던 급우가 생각이 났다.

 1987년도에 발표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중편 소설 속에서도 나는 초등학생 시절에 나에게 고통을 준 일그러진 영웅얼굴을 떠올렸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군사독재 정권이 마지막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나(한병태)는 지방으로 좌천된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서 작은 읍에 있는 초등학교로 전학한다. 나는 엄석대라는 이름을 가진 독재자가 이루어 놓은 힘의 제국인 학급에서 가치관의 심한 혼란을 느끼며 외롭게 항거한다. 그러나 혼자만의 항거가 의미없음을 깨닫고 엄석대라는 권력에 기대서 그 달콤함에 젖어들 무렵, 새로운 담임선생님이 등장한다. 독재자 엄석대가 이룩해 놓은 힘의 제국은 새로 오신 담임선생님에 의해 변혁을 겪으면서 힘없이 붕괴하고 만다.

 세월이 한참이나 흐른 후 사회인으로 성장한 나는 어느 날 피서 길에서, 수갑을 차고 경찰에 끌려가는 엄석대를 마주하게 된다.


 이 소설은 어른이 된 내(한병태)가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는 형식인데,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나는 이 소설에서 엄석대를, 나를 괴롭히던 급우에게 대응시켰다.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어린 시절에 내 영혼에 크나큰 고통을 준 그 때 그 장면과 그 친구의 얼굴이 언뜻언뜻 떠오르곤 한다.

 아주 하찮은 일이었고 그 친구는 아마도 까맣게 그 일을 잊어버렸겠지만 나에겐 그 작은 일이 환갑이 넘은 지금까지 기억 속에 단단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는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유리창을 깨뜨렸다고 집단적으로 현장을 목격한 것처럼 범인으로 몰아붙이던 다른 친구들의 얼굴들까지도 스틸사진처럼 아직도 생각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요즘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급우들의 집단 따돌림에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경우를 신문에서 읽으면서, 그날 담임 선생님의 현명하신 문제해결 능력이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그 일을 해결했을까 싶어서, 나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그래서 나도 나 자신을 한번 되짚어 본다.

 혹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까? 내 기억에는 전혀 없지만 말이다. 그렇게 작은 일에 내가 괴로워했는데, 반대로 나는 나보다 약자인 이웃들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을 수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할 때면 반성하는 의미에서 길

지 않은 인생 동안 이웃들에게 조금이라도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더 건네려고 노력한다.

 작은 사랑이 세상을 살맛나게 하리라 믿으면서…

 어찌되었던 나에게 고통을 줬던 그 급우의 이름은 내가 죽을 때까지 초등학교 친구들에게까지도 영원한 비밀이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초등학교 친구들 중에서 아무도 그가 누군지 모를 것이다.

 이 나이까지 되었으니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냥 웃고 넘어갈 일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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