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저 친구는 설악산을 어쩌면 저렇게 가볍게 생각하나”
젊은 친구가 가랑비 내리는 10월 말에 트레이닝 복(Sweat suit)에 운동화를 신고 조그만 서브 색만 메고 설악산 서북 주능선을 뛰고 있으니 기가 막혀서 내가 혼잣말로 한 말이다.
몇 년 전 일이다. 단풍의 절정이 지난 11월 초에 모 단체의 CEO들과 한계령에서 시작하여 설악산 서북 주능선을 거쳐서 천불동으로 하산하는 코스로 등산을 갔다. 설악산의 날씨는 수시로 변하기에 하룻밤 묵을 장소로 소청대피소를 미리 예약했지만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악천후에 대비하여 우모복과 바람막이, 나침판, 비상약품과 헤드랜턴 그리고 비상식량까지 챙기다 보니 내 배낭은 동료들보다 훨씬 무겁고 클 수밖에 없었다.
•설악산 서북주능 모습
학창시절부터 시작하여 40년 넘게 등산과 암벽등반을 하면서 종종 사고를 목격하거나 사고 관련 뉴스를 대하다보니 나만의 안전 노하우인 비상용품을 챙기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었다. 이번처럼 예전에 많이 가봐서 아는 코스인 경우에는 예외지만 설악산과 같은 바위산의 한 번도 안 가본 코스를 갈 때는 자일(로프)과 가벼운 암벽 장비까지 몇 개 챙기다보니 때로는 함께 등산하는 동료로부터 “그런 것 언제 쓴다고 그렇게 무겁게 가지고 다니느냐.”라는 가벼운 핀잔을 듣기도 한다. (그런데 10여 년 전 남설악 점봉산에서 처음 가본 등산코스를 가다가 안개와 쏟아지는 폭우로 인하여 주 등산로를 찾지 못하는 바람에 30미터나 되는 절벽을 자일하강한 경우도 있었는데 그때 비상장비로 챙겨간 자일이 없었다면 빗속에 절벽 부근에서 비박을 했거나 조난 당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서늘하다.)
그러다보니 한계령 휴게소에서 서북주능선까지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다가 그치기를 반복하는 길을 올라가는데 짐 무게로 인하여 가벼운 배낭을 멘 동료들을 따라잡기 벅차서 헉헉거리며 올라갔다. 서북주 능선에 올라서서 잠시 땀을 식히면서 바라다본 설악 연봉은 역시 설악산이란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구나 싶었다.
비구름이 골짜기 여기저기에 잠겨 있다가 능선으로 빠르게 올라오면서 구름을 흩뿌리면 온 세상은 짙은 안개로 자욱해졌다가 잠시 후에 다시 그 구름은 또 다른 모양의 하얀 덩어리가 되어 이 골짜기 저 골짜기로 흩어졌다. 가랑비가 내리는데도 구름 위라서 시야는 말끔해져서 기분까지 상쾌하게 했다. 그러다가 다시 안개로 자욱해지고… 능선 길의 고사목들도 구름과 어우러져서 오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도 산을 열심히 오르고 때로는 대학 산 벗들과 암벽을 오르면 몸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지 괜히 기분이 좋아지게 된다. 이번의 산행도 멋진 설악의 연봉을 바라다보는 순간 예외가 아니었다. 능선 길에서는 동료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걸었는데, 그쳤다 내리기를 반복하는 비로 인하여 한기가 느껴져서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걸었다. 서북주능선에는 마치 구들장을 세로로 세워 놓은 것 같은 구들장 모양의 돌이 연속해서 나열해 있는 지역이 있다. 여기 바위가 비에 젖어 미끄러운 탓에 앞서가던 다른 팀들이 지체하는 바람에 산행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많이 걸렸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고 봤더니 한 명의 등산객이 바닥이 미끄러운 운동화를 신고 구들장 같은 돌판 바위에서 네발로 엉금엉금 기는 바람에 발생한 지체였다.
서북주능선 길을 3분의 2쯤 왔을까 함께 온 동료들과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남은 막걸리를 한 잔씩 하고는 조금씩 내리는 비와 바람으로 인하여 가벼운 한기가 느껴져서 즉시 출발을 하는데… 우리가 막걸리 한 잔하던 바로 옆에 운동화에 구들장 바윗길에서 헤맸던 트레이닝 복을 입은 그 젊은 친구(27~8세쯤으로 기억된다.)가 서브 색(Sub sack, 큰 배낭의 보조용으로 쓰는 아주 작은 배낭)을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출발을 하면서 그 친구에게 한 마디 했다. “비도 오락가락 하고 또 바람도 점점 세차지면서 기온이 내려가는데 젖은 트레이닝 복 차림으로 걸으면 체온손실이 심하니까 바람막이라도 꺼내서 입으세요.”라고… 그랬더니 이 친구 하시는 말 좀 보소!
“바람막이는 없는데요.” 그래서 서브 색에 뭐가 들어 있는지 물어봤더니 비스켓 서너 봉지와 막걸리 한 병 그리고 수건 외에는 가진 게 없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친한 친구에게 들었는데 5시간이면 소청대피소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고 소청대피소에 가면 먹을 것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간식만 가져가면 된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이 친구의 얼굴을 봤더니 옷이 설악의 찬비와 바람에 완전히 젖어서 입술이 새파랗게 변해 있었다. 허술한 옷차림이 걱정도 되고 또 마침 오늘 우리가 묵기로 한 대피소와 목적지가 같았기에 동료삼아서 함께 걷기로 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자기 발걸음이 많이 느리니까 먼저 가란다. 아마도 느낌상 얼마 전에 지났던 구들장 바위지역에서 엉금엉금 기면서 체력을 거의 소진한 것 같았다. 그래서 랜턴은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없단다. 그 친구와 함께 걷느라고 동료들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기에 동료들을 따라잡기 위해서 빨리 가버릴까 생각하다가 파랗게 질린 입술을 보고는 걱정이 되어서 그냥 둘이 같이 걷기로 했다. 그런데 이 친구의 걸음걸이가 성인이 걷는 걸음이 아니고 두, 세 살 먹은 어린애가 아장아장 걷는 것처럼 발걸음 보폭도 작을 뿐만 아니라 느려도 너무 느렸다. 그러더니 고작 20~30미터 정도 갔을 뿐인데 힘이 들어서 조금 쉬었다 가겠단다. 그냥 두고 가면 무슨 일이 나겠다 싶어서 내가 입고 있던 바람막이를 벗어서 그 친구를 입혔다. 그리고는 다시 걷기 시작하는데 그 친구가 갑자기 휘청거리더니 산길에 주저앉아 버렸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어지러워 걸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언젠가 인터넷에서 읽었던 저체온증(hypothermia)이 생각이 났다.
* 저체온증(hypothermia): 추운 환경에 노출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건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저체온증에 빠질 수 있으며 옷을 충분히 입지 않고 비에 젖거나 바람에 맞으면 위험하다. 물에 완전히 젖거나 빠졌다면 물의 열전도율이 높기 때문에 더욱 체온을 쉽게 잃게 되는데, 이러한 경우 체온 손실은 물의 온도에 따라 달라지며, 보통 16~21℃ 이하의 수온에서 잘 일어난다.
저체온증은 심부 온도에 따라 크게 경증, 중등도, 중증의 세 가지 범주로 나눈다. 경증(경한) 저체온증은 심부체온이 33~35℃인 경우를 말하며, 일반적으로 떨림 현상이 두드러지고 피부에 ‘닭살’로 불리는 털세움근(기모근) 수축 현상이 일어난다. 피부 혈관이 수축하여 피부가 창백해지고 입술이 청색을 띠게 된다. 기면 상태에 빠지거나 자꾸 잠을 자려고 하고 발음이 부정확해지기도 한다. 중심을 잘 못 잡고 쓰러지거나 외부의 자극에도 무반응 상태를 보이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울대학 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비바람이 점점 거세어지는 상황에서 저체온증이 와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친구를 그냥 두고 가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뻔했다. 작년에 아내가 사준 검정색 우모복(아내가 큰마음 먹고 사 준건데 아끼느라 거의 입지 않았다.)을 아깝지만 배낭에서 꺼내서 그 젊은 친구에게 입히고는 나는 바람막이를 다시 받아서 입었다. 나는 젊은 친구와 같이 걸으면서 학교는 어디 나왔느냐? 전공은 뭐였느냐? 군대는 갔다 왔나? 어디서 근무했나? 부모님은 살아 계시냐 연세가 어떻게 되시냐? 함께 사시냐? 여친은 있나? 여친 키는 크나? 예쁘냐? 등 정신을 집중하게 하려고 쉴 틈 없이 시시콜콜한 질문도 하고 간간이 내 젊은 날의 이야기도 해주면서 걸었다. 그리고는 팔짱을 끼고 같이 걸어가면서 저체온증에 대하여 설명을 했고 지금 젊은이가 전형적인 저체온이 오고 있다는 것과 열심히 걷지 않으면 오늘 소청 대피소에 가기 전에 의식을 잃을 수도 있다는 주의를 주었다.
그러면서 살아서 가족들 다시 만나려면 몸에서 열이 나서 걸음이 정상이 될 때까지 힘이 들더라도 계속 걸어야한다고 했다. 가엾은 그 친구도 내 설명을 듣고는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하여 완전히 이해를 하고서는 나와 팔짱을 끼고 계속해서 같이 걸었다. 한 시간 정도 쉬지 않고 그렇게 걸었을까
•저체온증의 등산객을 살렸던 검정색 우모복
그랬더니 걸음걸이도 정상의 80% 정도는 회복된 것 같았고 어지러운 증세도 사라졌다기에 팔짱을 풀고 앞장서서 걷도록 했다. 서북 주능선에서 남자 두 사람이 한 시간 정도 팔짱을 끼고 같이 걸어보면 알게 된다. 한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의 좁은 산길에서 빗물에 퉁퉁 불은 무릎 아랫부분의 살이 설악의 모진 바람에 단련이 된 키 낮은 관목의 단단한 가지에 쓸려서 상처투성이가 된다는 것을… (소청대피소에서 내 다리의 상처를 본 동료들이 어쩌다 그렇게 되었냐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였다.)
비바람이 상당히 세차져서 내 바람막이도 그 친구가 입은 우모복도 푹 젖어들면서 사방은 완전한 어둠 속에 잠겼다. 내가 가지고 있는 헤드 랜턴 한 개로 두 사람이 앞뒤로 서서 걸어가려니까 조금 전부터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거세진 비바람과 아직 완전히 회복이 안된 그 친구의 걸음걸이로 인하여 소청대피소까지의 길은 멀고도 멀었다. 끝청 부근에서 소청대피소에 먼저 도착한 동료들과 간신히 통화가 되었기에 늦어진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서 우리 두 사람은 밤 8시가 넘어서야 온몸이 푹 젖어서 물을 줄줄 흘리며 소청대피소에 들어섰다. 저체온으로 탈진 상태까지 갔었던 젊은 친구와 같이 걷느라고 한계령 휴게소에서 8시간이 넘게 걸려서 소청 대피소에 도착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동료들이 중청 갈림길까지 랜턴을 들고 마중 나와서 배낭을 들어주면서 수고했다고 격려해주었기에 큰 위안이 되었다.
그날 소청대피소에서는 완전히 젖은 내 우모복을 말리느라 수건을 덮고 발로 지근지근 밟아서 몇 번이나 수건의 물을 짜냈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도 나의 도움의 손길이 없었으면 그 친구는 설악산에서의 그날이 자신의 제삿날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팀이 막걸리를 한 잔 한 뒤 내가 그 친구를 만나서 함께 소청대피소에 도착하기까지 마중 나왔던 우리 동료들 말고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둠이 깔리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늦가을의 서북 주능선에 사람의 흔적이 완벽하게 사라진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날 이후로 그 친구를 살렸던 검정색 우모복은 산에 갈 때면 언제나 배낭의 아래 칸을 지키는 나의 친근한 벗이 되었다. 그리고 간혹 그 우모복을 보면서 마치 사람을 대하듯 이야기하곤 한다. “너는 사람 한 명을 살렸던 옷이니 그만하면 세상에 와서 너의 할 일을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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