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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칼럼



한편의 사랑과 우정을 위한 길
18-01-25 09:40 2,101회 0건
(히말라야에 잠든 백 준호 후배님께 이 글을 바친다)
 
"이야~ 경치 죽인다."
영화 히말라야에서 죽어가는 친구(박 무택)의 동반자가 되어주기 위해서 8750미터까지 혼자 고독한 등반을 해서 올라간 박 정복이 박 무택의 곁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하는 감탄의 말이다.
잠시 후 태양이 사라지면 친구 무택이도 자기 자신(박 정복)도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날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고등학교 산악회 후배 중에 백 준호란 이름을 가진 후배가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내가 산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새카만 후배인 그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고등학생 시절에 산악부 회원인 동기들을 보면 학생이 공부는 바닥이 기본이고 삐딱한 자세로 침도 찍찍 뱉고 담배도 피울 뿐만 아니라 또 자기들끼리 산에 가면 야영하면서 술도 마신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최소한 나에겐 산악부가 껄렁패 조직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런 애들 근처에도 가까이 가지 않았었다. 그러다 보니 고교시절에 산악부는 나에게 좋지 않은 선입감으로 다가왔었다. 또한 나의 심각한 고소공포증도 산을 멀리했던 이유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내가 대학을 들어가면서 전자공학과 선배들의 꼬임(예쁜 여대생이 많다고 했는데 그 시절만 하더라도 공대 전체에 여학생이 한두 명밖에 없는 시절이라서 유혹의 강도가 상당히 강했다)으로 산악부에 들어가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산을 찾은 인연으로 아내도 산악부에서 만난 후배였을 뿐만 아니라 살아오는 동안 산과 산벗들은 내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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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고등학교 재경 총동문회장과 동문 산모임인 청운 산우회 등반대장을 맡으면서 후배들과의 산행이 많아졌고 고등학교 시절에 백 준호와 친하게 지냈고 껄렁패들과 한패였던 후배가 술자리에서 준호가 에베레스트를 엄 홍길 대장과 같이 등정을 했었고 그 이후에 등반대장을 하면서 사고로 죽어가는 친구 박 무택의 곁에서 죽음을 같이한 이야기를 해주었기에 그의 이름은 나에게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그리고 백 준호가 대한민국 산악인 의사자 1호로 등재된 것도 알려주었다.
 이야기를 듣고 여러 해가 지난 후 ‘히말라야’라는 휴먼 원정대 영화 속에서 준호가 내 앞에 나타나서 나의 눈물을 흠뻑 흘리도록 만들었다.

영화 속에서 산 친구인 박 무택을 구하려고, 아니 구하려는 게 아니라 같이 죽어주려고 정상 부근인 8750미터까지 혼자 오른 이가 바로 백 준호(영화에서의 ‘박 정복’이란 이름으로 나온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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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의 사랑이 아닌 친구와의 우정이라는 이름의 사랑 중에 가장 흡인력이 강한 사랑을 말하라면 감히 죽음이란 공포를 공유하는 취미를 함께하는 우정이 아닐까 싶다.
그중에 으뜸이 암벽과 빙벽등반 또는 히말라야를 오르는 산꾼들의 우정이 아닐까.
함께하는 동반자와 연결된 자일(로프)을 통한 믿음을 갖지 못하면 내가 가진 실력의 한계 수준에 있는 고 난이도의 수직 암벽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자일을 잡고 있는 동료의 믿음직한 표정에 눈을 한번 맞춘 후 산사람은 그를 신뢰하고 미끄러지면 죽거나 크게 다칠 수 있는 암벽과 빙벽을 또는 그런 것이 집대성되어 있는 히말라야나 알프스의 산을 오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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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을 오르다 보면 수직 벽에서 전해오는 위압감으로 인한 공포로 나도 모르게 자꾸 겸손해진다.
새끼손가락 굵기의 자일과 동료로부터 전해오는 신뢰만이 내 생명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인데 어떻게 겸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공부했던 전공과목도, 죽어라 외웠던 영어 단어도, 비즈니스를 위해서 고객과 눈에 보이지 않게 힘겨루기를 하던 영업의 노하우도, 직원들을 관리하던 경영의 이론도,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벗들과 내 사랑하는 가족들.....
이 모든 것이 암벽에서 추락할 때 자일과 동료가 나를 지켜주지 않으면 새벽 물 안개처럼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운 좋으면 목발 짚고 절뚝거리며 걸어 다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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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들은 나에게 이야기한다.
왜 그런 위험한 운동을 하느냐고?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한마디로 표현하겠나?
왜 산을 오르느냐고 물었을 때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이라고 이야기했던 조지 맬러리(영국의 등반가로 1924년 에베레스트 등반 도중 실종됨)도 어떻게 보면 마땅한 답이 없어서 아주 궁색한 답변밖에 못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우문현답이 될 수도 있겠지만....
대학 산악부에서 하이킹 코스로 산을 처음 대하고 나서 못된 선배들의 꼬드김에 빠져서 암벽에 입문하기 시작했는데......

나 자신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산 선배들의 꼬드김과 곁들여진 산 친구들의 진한 우정과 암벽에서의 가슴 설레는 아름다움과 공포가 어우러져서 나는 아직도 산과 암벽을 멀리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대학 산악부 전통으로 환갑(만 60세)이 된 선배에게 암벽등반 선등(암벽 등반팀에서 제일 먼저 오르는 행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후배들이 만들어 준다.
일반적으로 암벽에서 선배들은 후배들이 선등을 해서 올라간 후 뒤따라서(후등) 올라가기 때문에 설사 추락을 하더라도 위에 있는 선등자가 자일로 안전을 지켜주기 때문에 크게 다치지 않는다.
기껏해야 어깻죽지를 부딪혀서 멍이 조금 들거나 손등을 조금 긁히는 수준이다.
그래서 별로 긴장하지 않고도 편히 암벽을 오를 수 있다.
그러나 환갑이 지난 노장에게 선등을 맡기는 경우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추락하게 되면 나잇값을 하느라고 딱딱해진 뼈가 쉽게 부러지는 중상을 입거나 심지어는 죽음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코스를 택하지만 선배들은 대부분 사양했다.
그러다가 나를 꼬드겨서 암벽에 입문을 시켜준 산악부 1회 선배님이 설악산 장수대 인근의 리지 암벽 코스를 후배들의 강력한 확보(선등자의 안전을 지켜줌)를 바탕으로 선등을 끝내면서 후배들의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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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나도 차례가 되면 선등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그때부터 열심히 운동을 하리라 생각했었는데.....
그런데 생각과 행동 사이의 거리가 그렇게 멀리 있는 줄을 그때야 알았다.
무려 3년이란 시간이 바쁘다는 핑계로 어느새 후딱 지나가 버리면서 나도 환갑이 되었다.
선등하겠다고 3년 전에 약속을 한 것은 따지고 보면 나와의 약속이기도 했기에 피할 수는 없었고 시간은 어느새 어느 따뜻한 봄날에 설악산의 또 다른 리지 암벽 코스에서 내가 선등하는 날이 다가왔다.
선등을 제대로 해본 지 20년도 넘었기에 설악동에서 암벽장비를 꾸려서 배낭을 메고 후배들과 등반코스를 향해 걸어가면서 암벽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손바닥에 땀이 촉촉이 배어 오는 것이 내가 확실히 긴장을 하고 있구나 싶었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산악회장을 비롯한 든든한 선후배들의 격려였고, 든든함의 반대인 불안함은 그동안 팔 운동을 제대로 안 해서 두, 세 번의 고빗사위에서 내 팔 힘이 버텨줄까 하는 부분이었다.
3년이란 시간 동안 턱걸이나 팔 굽혀 펴기 같은 팔운동을 제대로 안한 것이 후회로 다가오면서 고스란히 불안감이 되어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결과부터 이야기하면 그날 나는 그 코스의 선등을 후배들의 든든한 확보를 바탕으로 완벽하게 끝냈다.

암벽에서 선등을, 그중에서도 난이도가 제일 높은 고빗사위를 오를 때면 온 세상의 풀벌레 소리,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까지도 멈춘 완벽한 고요 상태가 된다. 갑자기 울던 풀벌레와 새가 울지 않는 것도 아니고 부근의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멈춘 것도 아니지만 극도의 긴장 속에 몰입(Flow)의 경지에 있으면 오직 내 앞에 있는 수직 암벽의 촉감과 자일을 통해서 전해지는 확보자의 체온만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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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미터 떨어져 있는 동료의 체온을 느낀다면 믿어지지 않겠지만 불안함에 후배 동료의 얼굴을 쓱 한번 쳐다보면 후배는 신뢰가 가는 굳은 표정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선등자에게 무언의 격려를 한다.
그 느낌으로 암벽을 오르면 후배의 믿음직한 표정과 체온과 묵직함이 나 자신과 한 몸이 되어서 함께 고빗사위를 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분명 그 순간에 동료의 따뜻한 체온을 느꼈었다.
그 믿음이 나의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켜주면서 쉽게 암벽 코스를 완등했다.


내가 암벽의 정점에 올랐을 때 내 모습을 멋지게 찍어주려고 사진이 가장 잘 나오는 위치까지 그 무거운 대형 카메라를 들고 기다리던 또 다른 후배의 모습에서 다 해냈다는 감격과 함께 가슴 뭉클해지는 행복을 품에 가득 안았다.
내 명함에 있는 토왕성 폭포가 실처럼 머리 뒤로 보이는 바로 그 사진이 그날 정상에 서 있는 내 모습을 후배가 찍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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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내 다리의 힘이 빠지고 수전증이 걸려서 손을 덜덜 떨면서 손자 손녀의 손을 잡고 설악동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을 오르고 있을 때 왼쪽으로 멀리 보이는 그 암릉은 식어가는 내 피를 다시 한번 따뜻하게 해줄 것이다.
올봄에도 후배들과 바로 그 코스를 한번 오르자고 약속을 했기에 5월의 설악산이 하릴없이 기다려진다.
이번에는 든든한 후배들이 선등해주는 암벽 코스를 나는 즐기면서 올라만 가면 되니까 아무 걱정이 없다.  
그렇게 선, 후배의 가족보다 진한 동료애가 있기에 일반인에게는 상상도 할 수없는, 백 준호와 같이 친구를 위해서 기꺼이 죽음도 함께 나누는 말도 안 되는 사랑도 하게 된다.
나와 같이 목숨 걸 수 있는 사랑, 목숨 걸 수 있는 우정이 있다면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이성과의 사랑이던, 형제간의 사랑이던, 친구 간의 사랑이던, 아가페적 사랑이던 아니면 불륜의 사랑일지라도....
아!
그러고 보니 어느새 나도 골수 껄렁패의 반열에 들어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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