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임원에서 삼척으로 통하는 국도는 최근 준 고속도로가 되어 옛날의 꼬불꼬불한 길로 가는 것보다 시간이 1/3밖에 걸리지 않는다. 지난 겨울 가까운 선배 내외와 임원항에서 싱싱한 회에 소주 한잔 하고는 얼큰한 기분에 아내가 운전하는 옆자리에 앉아 어둠이 깔린 밤, 삼척에 있는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눈앞에 전복된 두 대의 차가 보였다.
"여보! 차 세워!” 급작스런 나의 말에도 갑자기 왜 세우라는지 이유를 모르는 아내는 차를 세우지 않고 속도만 조금 줄였다. 그냥 뒀다가는 전복된 차를 그대로 들이받을 게 뻔했기에 차 안이 떠나갈 정도로 소리쳤다. “당장 차 세워!” 깜짝 놀란 아내가 도로 가운데에 차를 세웠고, 그제야 아내도 20 미터 앞의 전복된 차를 목격한 모양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우리가 뒤에서 오는 차에 부딪힐 수 있으니 사고 난 차를 30미터쯤 지나간 지점에 차를 세우라고 했다. 아내는 얼마나 놀랐는지 벌벌 떨면서 연기가 무럭 무럭 피어오르는 두 대의 차량 사이로 기어가다시피 아주 천천히 통과한 후, 갓길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나는 사고 차량을 향해 마구 달려가면서 빌었다. ‘제발 제가 죽어 있는 사람이 아니고 살아 있는 사람을 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옆으로 넘어진 탑차에서 사람의 움직임이 보였다. 한쪽 문은 바닥에 깔렸기에 운전석 문을 잡아당겨 봤지만 옆으로 구르면서 문짝이 크게 찌그러져서 꿈쩍도 안 했다. 하는 수 없이 자동차 앞 유리창을 신사화를 신은 발로 마구 걷어찼지만 유리는 꿈쩍도 안 했다. 유리를 후려칠 나무 조각이라도 있는지 주위를 살폈지만 깨끗한 고속도로에서 나무 조각을 발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사이 라이트를 켠 차들은 사고가 난 두 대의 차량 사이를 솜씨 좋게 운전하면서 빠져나갔고 정신없이 유리창을 걷어차고 있는 내가 방해가 되었는지 빵빵 경적을 울리는 차도 있었다. 그 순간 자동차에 타이어 갈아 끼울 때 쓰는 수동 잭(Jack, 작기)이 생각났다.
미친 사람처럼 허둥거리며 차로 뛰어가서 뒤 트렁크에서 잭을 끄집어 내면서 아내에게 119에 신고해 달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내는 조금 전에 차를 세우자마자 바로 신고했단다. 다시 사고 차량으로 달려간 나는 수동 잭으로 유리창을 마구 후려쳤더니 비로소 유리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혼자서 금이 간 유리창을 발로 밀었더니 그때서야 유리가 조금씩 안쪽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도 사고 차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기에 불이 언제 붙을지 몰라서 마음은 급해졌는데 다행히 지나가던 승용차의 운전자가 한 명 나와서 나와 같이 유리창을 발로 밀기 시작했다. 유리창이 완전히 밀리면서 부상자가 빠져나올 공간이 생겼다. 밖으로 나온 운전자는 하반신이 피투성이였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안전을 확인한 후 다시 SUV 차량인 옆 차로 달려갔더니 다행히도 그 차의 운전자는 큰 부상 없이 차를 탈출했는데 많이 아픈지 차 옆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바로 그때 응급 차량과 소방차가 도착하였기에 그분들께 부상자를 넘겨 드리고 차로 돌아왔다. 삼척으로 오는 차 안에서 같이 타고 있던 학교 선배가 무섭지 않더냐고 묻는다. 내가 대답했다. "선배님, 제가 사고 차량으로 달려갈 때 온몸이 마구 떨렸습니다. 머리통이 터져서 죽어 있는 시체를 볼 수도 있는데 왜 안 무섭겠습니까? 그렇지만 사고 난 분이 우리 가족이라 생각해 보십시오. 연기가 나는 것으로 봤을 때 잠시 후 차량에 불이 붙어서 타 죽을 수도 있는데 저는 그들을 내버려두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분이 제 가족은 아니지만 내 조국 대한민국의 국민입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무서움에 떨면서도 달려갔습니다.” 최근 국가적 재난이 생겨서 온 나라가 몇 달 동안 비통에 잠겼다. 그리고 사고 선박의 선장과 선원들에게 분노를 마구 표출했다. 자기 자식보다 어린 고등학생들과 승객을 배에 남겨두고 탈출하는 인간들에 대해서는 정신감정부터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말 그 인간들은 죽이고 싶을 만큼 나쁜 인간이다. 그런데 나는 우리 자신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행동했겠는가를… 그 답을 얻기 위해서 내가 경험한 교통사고 현장을 대입해 보자. 교통사고가 난 차량에서 부상자를 구출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을 도와주지 않고 그 사이를 빠져나가는 무수한 차량의 운전자들은 자신이 사고를 일으키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잘못도 없다고 할 것인가? 하물며 자기 차가 빠져나가는 데 방해가 된다고 사고 차량의 부상자를 구출하고 있는 순간에 빵빵 경적을 울리는 데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때 그 순간에는 얼마나 화가 나던지 내가 들고 있는 수동 잭으로 그 인간이 타고 있는 자동차 유리창을 내려치고 싶었다.
왜 우리는 남의 잘못은 분노하고 비난하면서 그와 같은 상황에서 자신은 비난받을 짓을 하는 것일까? 세월호 선장과 자신의 행동은 다르다고 보는 것일까?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한번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재난에 즈음하여 학생 때부터 재난 관련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서 실시하는 데서 우리 사회를 조금씩 바뀌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