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news

CEO 칼럼



[CEO칼럼] 일흔에 즈음하여
24-12-26 09:46 581회 0건

3529508162_1735170489.9534.png


내 나이가 일흔이라니?

며칠 전 온 가족이 모여서 조촐하게 70세 생일파티를 했다.

목청껏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는 쌍둥이 손자와 손녀가 함께 있어서 생일파티는 끝날 때까지 시끌벅적했다.


나에겐 일흔이란 숫자는 영원히 올 것 같지 않았었는데 그동안 몇 번의 죽음문턱을 잘 넘기다보니 어느새 일흔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32살에 위암수술을 받은 후, 백혈병으로 투병중인 4살된 아들과 태어난 지 10개월 된 둘째, 그리고 청상과부로 불리기 딱 좋은 나이인 29살의 아내를 보며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 조상신에게 병원 치료비로 인한 빚을 모두 갚고 둘째가 대학 입학하는 쉰 살까지만 살아있게 해달라고 빌었었다.

그 시절만 해도 암 진단이 내려지면 80%는 하늘나라 특급열차 예매표를 끊어 놓은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고 위의 반을 절제하는 수술 후 극심한 소화불량과 과민성 대장증후군으로 고통을 받았으니 쉰 살까지 살아있게 해달라는 소원도 그 때로서는 과분한 부탁이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쉰 살이라는 간절한 소망에 더하여 덤으로 스무 살이나 더 살았고 결혼한 둘째와 며느리가 한 집에 같이 살겠다고 하는 바람에 지금은 손주 셋까지 더하여 8명의 대가족이 매일같이 정신없이 살고 있다.

그런데 3년 전에 또 한 번의 위기가 있었으니....

새벽 6시경에 제2경인고속도로에서 운전하던 중 과속에다가 졸음 운전한 차가 내 차를 추월하면서 차 옆구리를 치는 바람에 허공을 날아서 갓길의 시멘트 옹벽을 들이받고 멈추어 섰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나는 여러 곳의 피부가 찢어지고 상처에서 출혈이 있긴 했지만 큰 부상은 없었는데 조수석에 있던 아내는 척추골절에 갈비뼈 10개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3529508162_1735173833.6593.jpg


그나마 평소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걸었었고 주말이면 근교산을 섭렵하며 다녔기에 아내는 나이에 비하여 튼튼한 뼈 건강을 유지한 탓에 다행히 몇 달간 척추보호대만 착용하고 수술 없이 완치가 되어 지금은 하루 4~5시간 산행은 충분히 감당할 만큼 회복이 되었다. 

그래서 70이란 나이를 내가 셀 수 있음은 천운이란 생각을 하게 되고 살아가면서 죽음과 삶은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내 곁에 머물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얼마 전 교수로 정년퇴임한 대학친구가 위암진단을 받았다면서 전화가 왔었다.

내가 젊은 나이에 위암 수술 받았었기에 가까운 주위사람들이 위암진단을 받으면 나의 수술 후의 삶에 대하여 자세히 물어오기 때문에 위암 투병에 있어서는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80년대만 해도 위암은 대부분 개복수술을 했기에 수술 후 20여 일 동안은 영양제 주사로 식사를 대신했었는데 요즈음은 내시경수술을 해서 2~3일이 지나면 미음을 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의술의 발전 속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암 수술 받은 친구는 위의 상부 위치에 암이 생겨서 위의 대부분을 절제했다는데 다행히도 조기위암이라서 별도의 항암치료는 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매일 1만보이상 걷기 운동만 열심히 하라고 조언해주었다.   


대학 다니던 70년대까지만 해도 건전지라면 대부분 망간건전지였다.

충전식 카드뮴 전지가 있긴 했지만 가격도 비싼데다가 수명도 짧고 전압도 1.3볼트(일반 망간건전지는 1.5볼트)라서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되지는 못했다. 

망간건전지를 랜턴에 넣고 사용하다 보면 점차 불빛이 희미해지면서 나중에는 불이 간신히 들어오는 상태가 되었었다.

그런데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요즘의 리튬전지는 충전식인데다가 랜턴으로 사용 시 방전이 거의 끝날 때까지 불 밝기가 거의 일정하다가 갑자기 꺼져버린다.

그래서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우리는 망간전지처럼 노후를 비실비실하면서 살지 말고 리튬전지처럼 생명이 다할 때까지 열심히 사회활동하면서 멋지게 지내다가 ‘99881234 하자’(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1~4달 정도 짧게 고통 받고 죽자)라고 우스갯 말을 하곤 한다.


3529508162_1735173951.7865.jpg


나의 경우에는 젊어서 위암수술을 받은 후 그때부터 운동을 삶의 일부로 삼았던 것이 건강관리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60살이 넘어서면서 노화가 서서히 진행되다보니까 여러 가지 소소한 질병(역류성 식도염, 소화불량, 과민성 대장증후군, 감기, 이석증, 눈꺼풀 염증, 피부염 등)들이 건강을 위협했었는데 6년 전부터는 하루도 빼지 않고 평균 1만5천보를 걸었고 해마다 80회 전후로 등산을 하다 보니 노화로 인한 소소한 질병들은 증상이 거의 사라져버렸다.  

매일 가벼운 걷기운동을 하니까 무릎건강도 좋아져서 3년 전 KBS TV의 ‘영상앨범 산’프로그램에 출연 차 미국 국립공원(노스 캐스케이드, 글레이셔, 옐로우스톤, 틸톤 국립공원과 솔트레이크)의 강행군 트래킹에서도 무리가 없었고 올해 아내와 같이 스위스 알프스(마트호른, 아이거, 융프라우, 피르스트 )트래킹도 무난히 감당 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학창시절부터 꾸준히 해온 암벽등반을 할 수 있는 체력도 아직은 유지되고 있다. 


이노비즈 협회 임원을 맡고 계신 분이 나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했다.

‘성 회장은 30대에 암 수술을 받았지만 꾸준한 운동으로 의사의 암 진단을 마치 오진이었던 것처럼 바꿔버린 삶이었다.’

한 가지 엉뚱한 걱정은 이러다가 가족들에게 폐가 될 정도로 너무 오래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괜한 걱정도 하게 된다.

그래도 언제 떠날지 모르는 게 우리의 인생이라서 이 기회에 가족들에게 미리 죽음에 대한 유언을 남기려 한다.


3529508162_1735173924.3775.jpg


“여보! 아들! 혜리(며느리)야! 그리고 손주들아! 그동안 함께 해줘서 고마웠다. 내가 죽거든 많이 울지 말고 아주 조금만 울어라. 그러고는 우리들의 행복했던 추억들을 이야기하면서 웃으면서 나를 떠나 보내주렴. 50살까지만 살아도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70살이 넘게 살면서 아내, 자식들과 알콩달콩 재미있게 지냈고 아들, 며느리와 한 집에 같이 산 덕분에 세 손주들 커가면서 재롱떠는 것 다보고 가는데 이보다 더 행복한 죽음이 어디 있겠느냐?”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