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내용은 매일경제(19.02.08.)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얼마 전 서울 강남 모 여고에서 시험지 답안이 교무부장인 아버지에 의해 쌍둥이 자녀에게 유출된 정황이 포착됐다.
아직 재판이 끝나지 않아 범죄 성립 여부를 속단할 수 없지만 아버지가 구속되고 쌍둥이 딸은 성적 무효 및 퇴학 처리된 것으로 봐서 범죄의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 이번 일로 인해 수험생들과 수험생을 둔 학부형 입장에서 느끼는 배신감과 분노는 얼마나 컸을까?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직접적인 책임이 있겠지만 나는 중요 원인을 획일적인 입시제도에서 찾고자 한다.
우연한 기회에 혁신 벤처 관련 중소기업 단체장들끼리 모여 이야기하던 중 `지금의 내신제도가 우리들이 학교 다닐 적에 있었다면 졸업한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을까?` 하고 질문했는데 대부분 자신이 나온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그 시절 한두 번 방황을 하거나 엉뚱한 짓도 했기 때문에 지금의 내신 성적 계산법을 적용하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 경우만 보더라도 중학생 때부터 공부는 뒷전이고 라디오, 무전기를 조립하면서 보내다 보니 석차는 항상 꼴찌였기에 고교 진학 때도 추가 모집하는 곳에 간신히 들어갔다. 고교시절 성적은 늘 뒤에서부터 세는 게 빨랐다. 졸업반이 되면서 `이러다가 내 인생이 죽도 밥도 안 되겠다`는 생각에 열정과 집념으로 공부했고, 본고사라는 단판 승부 끝에 원하던 대학에 갈 수 있었다.
GE를 창업한 에디슨,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우리나라의 줄 세우기 기준으로 본다면 결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는 말썽꾸러기였다. 하지만 그들의 호기심과 창의성은 세상을 혁신으로 이끌었다. 그런 창의적 인재를 우리 교육시스템이 수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국가의 창의적 역량이 바뀐다.
나는 지금도 암벽 등반을 하고 스쿠버다이빙을 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역마살이 도지면 낡은 배낭 하나 메고 배낭여행을 하고 때로는 미친 듯이 혼자서 설악산을 넘는다. 젊은이들 관점에서는 평범할지 모르지만 기업 경영자가 환갑이 지나도 한참 지난 나이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저 인간 정상이야?`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분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이 쓴 책 `사장의 원칙`에서 신 회장은 `기업 혁신의 원천은 돈이 아니고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입시의 기준은 내신과 수능이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도입한 것이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 입시제도가 창의적인 인재의 발목을 부여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봐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수능과 내신이 인재를 찾는 획일적인 잣대가 되면서 모험을 좋아하고 호기심 많고 창의성 있는 인재들을 줄 서기에서 후순위로 내모는 결과를 가져온다. 창의성보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만 하는 `엄친아` 순서로 줄을 세운 결과는 창업과 같은 모험이 아니라 공직자와 대기업 취업에 매달리는 것이다.
정부는 호기심과 창의적 생각으로 엉뚱한 행동을 하는 인재들에게 사고의 지평선을 열어줘야 한다. 그리고 혁신 성장에 필요한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대학이 창의성을 가진 학생을 받아들여 인재의 특성에 맞게 교육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인재가 국가를 먹여살린다고 한다. 이런 시대에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인재를 수능과 내신 성적 우수자로 뽑는 대학입시는 뭔가 잘 안 맞는 것 같다.
창의적인 인재가 야성을 가진 동물이라면 내신으로 잘 길들여진 인재는 야성을 상실한 가축과 같으며 야성을 잃은 가축은 도전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야성을 상실한 인재는 창업에 도전하지 않고 공직자나 대기업 취업에 매달린다. 혁신 성장이 진정한 국가 성장동력이고 우리 한국 경제의 당면 과제라면, 정부는 창의적 인간을 키우는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신과 수능이라는 입시제도에서 과감히 벗어나 호기심 많은 인재를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절실한 시점에 우리는 와 있다.